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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27. 2021

불량식품은 먹어도 개사료는 안먹는다

딸의 드레스 사진을 올려 색상을 물어봤던 SNS글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사람마다 다른 컬러로 답을 했다. 색맹이어서가 아니다. 색상은 눈으로 보지만 뇌로 인식한다. 색상은 동일하고 눈의 기능도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뇌는 저마다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내가 지켜보고 있는 세계는 정확히 1/5초후에 펼쳐질 가상의 세계다.  뇌가 그렇게 인식한다. 무거운 뇌는 장식용이 아니다.

이렇듯 우리는 각자 실제가 아닌 인식한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각자의 경험과 지적 능력이 투영된 인식의 세계다. 이러한 고유한 경험과 지식, 정보는 뇌에 축적되고 그 뇌가 보여주는 세계인 것이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인생관, 선택과 판단이 모두 다른 이유다. 그 숫자는 정확히 지구에 생존하고 있는 인구와 같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예측 가능한 것을 선호하고 변화를 거부한다. 낯선 것을 경계하고 친숙한 것을 선호한다. 긴장보다는 이완을 선택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충성하고, 권위를 존중하며, 전통과 순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보수적인 태도는 다른 집단과 인종을 배척하고, 개인의 자유와 소수의 인권을 억압하는 단점이 있다. 보수는 전체에 속한 하나를 지향한다. 따뜻하고 편안하다.

이 반대편에 진보적 성향이 있다.
모험하길 좋아하고 변화를 모색한다. 자신을 더 중시하고 이상을 추구한다. 다른 세계에 너그럽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은 타고 난다기 보다 내면에 꿈틀거리는 충동이나 모반에 가깝다. 그래서 집단에서 배격당하기 쉽고 충돌을 빚을 때도 있는 것이다. 진보는 하나가 모여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춥고 외로운 게 당연하다.

나는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다.
내 안에 있는 뜨거운 마그마의 기운을 느끼고 인정하는 것 뿐이다.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가져다 주는 반복, 권태나 지루함, 우울감이 싫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자괴감과 타인을 바라보며 느끼는 분노와 죄책감이 괴롭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영혼이 들려주는 소리라고도 했다.

이 세계는 80억 인구, 80억개의 생각으로 굴러간다.
자기만의 인식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본성에 가까운 보수적인 태도만 견지하다보면 공익을 추구할 수 없고 공익을 우선하지 않는 사회는 무너진다. 야만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을 만들고 정치를 하며 개인을 규제하는 것이다.

정작 나를 갑갑하게 하는 것은 이런 보수와 진보, 공익과 사익 추구 따위가 아니다.
왜 저마다 다른 고유한 인식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거나 믿으려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내가 알던 문재인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생물학적 수명을 다했다는 뜻도 아니거니와 이것은 나의 문장이고 판단이다.
현 정부를 부정하고, 정당과 연결 지으며 누구를 지지하느냐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누군가가 내 말을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인식이다.
핵심은 ‘내가 알던’이고 ‘문재인’이다. 나는 기레기가 아니다. 사면권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문재인과 그의 처신을 지적한 것이고 ‘내가 알던’ 면에 대한 실망과 분노다. 결국 ‘내가 알던’은 나만 안다.  

나와 당신은 분명 다른 사람이다. 비슷한 판단을 하고 객관식 난에 같은 답을 써넣더라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다.
사면이 득표율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문재인을 비토한다고 해서 현 정권이 불공정과 야합의 온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썩었다고 해서 국힘당이  깨끗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적어도 “그렇다면 국힘당, 윤석열을 찍을 것인가?”란 질문만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불량 식품을 먹을지언정 개사료를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윤석열 지지자는 민주당 정권을 심판하려는 것이고, 이재명 지지자는 역사를 후퇴시키지 않으려는 것이다. 옳고 그르고는 없다. 다만 사유의 등위와 깊이 차만 있다.
우리는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인식의 세계속에 살고있다. 한 컬러로 보일지라도 당신과 나는 다른 카드섹션을 들고있다.
단무지는 중국집에서나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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