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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27. 2021

친절한 재인씨

“그냥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요. 누구에게든 친절하게 대하면서요.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모르잖아요”
가사를 음미하며 듣게 되는 ‘FRIENDS’ ‘2002’의 앤 마리(Anne Marie)가 “당신은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가?”라는 팬의 질문에 대답한 말이다.

영화 <원더(Wonder 2017)>에도 비슷한 명대사가 나온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택하라.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안면기형장애를 겪는 주인공 어기의 담임선생님이 들려 준 말이다.
원문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명강사인 웨인 W. 다이어 박사의 "If you have a choice between being right and being kind, choose kind."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는 싶지만 그다지 친절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항상 옳으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도 없다.
누구나 “옳음과 친절함”사이에서 주저할 때가 있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옳음을 선택하면 충돌과 반론을 수반하기 쉽고, 친절은 포용과 이해를 전제한다.
불완전한 인간이다보니 항상 옳을 수도 없고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도 없다. 다만 선택의 순간에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추구할 뿐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누가 옳음을 더 추구해야 하고, 어떤 문제에서 친절해도 되는지 어렴풋이 짐작정도를 하는 것 같다.

팬데믹으로 만남은 제한되는데 대화는 늘어나고, 공감과 소통은 줄어드는데 정보와 주장은 넘쳐난다. 책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글쓰기와 작가 지망생은 늘고 있는 현상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과 SNS가 일상화되고 개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이다.
세상에 ‘옳음’은 소음으로 느껴질만큼 넘쳐나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혼돈스럽다. 누구나 친절함이 말하고 미덕인 줄도 알지만 실천하는 사례는 드물다.
2019년 악천후로 무산된 내한공연를 대신해 자비로 게릴라 콘서트를 연 앤 마리의 한국 팬들이 급증한 이유다. 앤 마리는 팬들의 사랑으로 존재하는 가수다.
정작 문제는 옳음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친절함을 따른다든지 친절함으로 옳음을 가리고 그르치게 되는 경우다.

갑작스런 한파만큼이나 썰렁했던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한국에는 크리스마스의 기적(Miracle of Christmas)이라고 불린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1950년 12월 24일의 흥남철수작전(12.15~12.24)이다.
우리는 역사책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영화 <국제시장 (2014)>을 통해 이 사건을 알고 있다.
흥남철수작전이 ‘성공적인 후퇴’로 기록된 것은 ‘장진호 전투’에서 보인 미 해병대의 활약상에 힘입은 것이다.  6.25 전쟁의 명예 훈장 수훈자 131명 중 13명이 장진호 전투 생존자였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치열했는지 가늠하고도 남는다.
‘장진호 전투’는 세계 전쟁사에 몇 가지 기록을 남긴다. ‘현대전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대가 맞서 싸운 최초의 전투 (대규모 중공군이 참전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추운 곳에서 치러진 전투(전쟁사상자보다 동사자가 훨씬 많다)’ ‘미국과 중국 서로가 승리를 주장하는 전투 (중공군의 전략적 승리, 연합군의 전술적 승리)’다.

이 장진호 전투에서 영웅이 탄생한다.
미해병대를 추축으로 하는 연합군을 전멸위기에서 구한 ‘덕동고개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끈 F중대 중대장 바버 대위다.
그는 중대병력이 도착하기에 앞서 위험을 무릅쓰고 덕동고개를 찾아 전략을 구상한다. 해가 다 저물어서야 맹추위를 뚫고 병력이 도착했다.
그는 지친 병사들에게 천막을 치고 휴식을 취하게 해야 할지 아니면 교본대로 언 땅을 파서 진지를 구축하라고 명령할지 선택해야 했다. 그는 오랜 고심 끝에 병사들의 고충과 불만을 감수하고 참호를 파서 진지를 구축하게 한다. 중대원들은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 곱은 손으로 화강암 바위산를 파야 했다. 잠시 머무르면 되는 임무였지만 교본대로 원칙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바버 대위는 꼼꼼하게 현장을 둘러보며 작업을 독려했다. 밤10시가 넘어서야 참호 파기와 진지 구축이 끝났다.

그날 밤 예상하지 못했던 중공군의 대공세가 시작됐다.
바버의 F중대가 4일간 진지를 사수하는 동안 2개 연대가 탈출할 수 있었다. 전투를 치르며 237명의 중대원 중 86명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사단급의 중공군을 막아내고 그 사상자는 2000명을 육박했다.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을텐데 한 사람의 지휘관이 원칙을 고수하고 옳음을 선택했기에 연대병력을 탈출시키고 흥남철수로 숱한 생명을 구한 것이다.
지휘관이나 지도자에게는 양보하거나 타협해서는 안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만약 지휘관인 바버 대위가 눈 앞에 펼쳐진 중대원들의 처참한 몰골에 연민을 느끼고 당장의 불만을 꺼려해 ‘친절함’을 선택했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생각해 봐야한다.

문재인은 흥남철수작전으로 살아남은 실향민의 후손이다. 그는 한국의 대통령이며 정치지도자다.
‘옳음’과 ‘친절함’중에 ‘옳음’을 선택해야 하는 의무를 져야하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책임’은 옳음을 선택해서 져야 할 일부 국민의 불만과 정치적 부담이어야 하지, 친절을 베풀어서 감당할 국민의 반감과 역사적 평가가 아닌 것이다.

나는 5.18유족을 안아 준 문재인의 친절함을 높이 산다. 옳음에 친절함이 자연스레 녹아든 드문 장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직대통령의 사면’이 병중인 수감된 노인의 처지를 고려한 것이라면 ‘친절함’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눈 앞에 닥친 대선을 감안하고 후임자에 대한 배려라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
국가 운영에 있어 친절함은 국민의 몫이어야 한다. 인간적 동정과 연민은 대중들의 언어여야지 지도자의 덕목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도자에게는 '옳음'을 선택하는 지혜와 결단력 그리고 후과까지 감내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는 순간이지만 역사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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