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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27. 202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7,000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많은 섬만큼이나 다양한 야생동물이 산다. 특히 130여종이 넘는 야생조류의 천국이다.
그래서인지 인도네시아사람들은 새소리가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각 가정마다 노래하는 새를 기르는 이유다. 한국의 새벽 닭을 새가 대신하는 것이다.

자바섬에는 2000여마리의 새와 물품을 파는 새시장이 있다. 그 곳에서 새 소리경연대회가 열린다. 이벤트행사가 아니라 정식대회다. 예선, 본선을 거쳐 우승을 가리는데 마치 한국의 가수 오디션을 방불케한다.
귤빛지빠귀, 큰녹색잎새, 긴꼬리때까치, 모란앵무등 전국 각지에서 출전한 쟁쟁한 새들이 타고난 소리를 뽐낸다. 이런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엄청난 상금과 명예를 얻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새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만큼 새소리 심사는 공정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여러명 의 심사위원들이 채점을 하게 되는데 평가 항목도 가수 오디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멜로디, 성량, 지속시간 등 부문별로 나눠서 평가한다.
"새가 노래할 때의 음정을 심사합니다. 새가 지지귀기 시작하면 얼마나 다양한 소리를 내는지 조화로운 소리를 내는지도 평가하고요, 듣는 이의 마음을 얼마나 편안하게 해주는 지도 평가하죠. "
심사위원 자격도 까다롭다. 새자격증을 취득하고 1년간의 특수훈련을 거쳐야만 한단다.

한국에서도 보기드문 새소리경연 대회가 열렸다.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리는 경연장이 아니다. 앵무새의  사람 흉내가 얼마나 그럴듯한지 보는 대회다.
대회명칭은 '기자회견'이다.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깃털을 단장한 단 한마리의 앵무새가 출전했다. 기레기들이 몰려들어 심사위원를 자처했다.

심사위원들이 세계 꼴찌 수준의 한국 기레기들인만큼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헤어스타일, 메이커업, 대사, 제스춰, 퍼포먼스를 부문별로 심사한다.
어차피 칭송하고 우승시키기 위해 마련된 무대인만큼 다양하고 역겨운 심사평이 난무한다.
"남편 13차례 언급" "눈도 못뜬 채... 고개숙인" "울먹이기도..."
앞다퉈 되지도않는 '영부인천가'를 지어 바치는 것으로 채점을 대신한다. 조류가 눈물을 흘리는 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새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부러워하게 될 줄 몰랐다. 몸으로 우는 앵무새의 가식적인 퍼포먼스는 불쾌하다. 초딩생처럼 앵무새 말을 받아쓰기하는 기레기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아마 새들은 인간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더러 새대가리라고? 늬들이야말로 정신차려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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