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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29. 2021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바라지도 않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은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있다. “만약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싫다고 했다. 그는 과거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는 것조차 끔직하다는 표정이었다. 부침도 많고 승산도 희박한 연예계에서 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20대부터 올곧게 한가지 일, 하나의 직업을 가졌다. 가업도 아니고 어릴적부터 꿈꿔왔던 일도 아니었다. 운명이라는 땟목을 타고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이즈음 되고보니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굴뚝청소부가 되고 싶다. 그것은 20대 아니 지금이라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유럽 특히 추운 지방에는 여전히 굴뚝청소부가 있다. 중세시대부터 이어 온 오래된 직업이다. 예전과 달리 깔끔하고 검정 오버롤(위 아래가 통으로 된 멜빵달린 작업복)을 입고 승합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작업의 본질은 변한 게 없다.
쇠수세미가 달린 굵은 와이어 다발을 어깨에 걸치고 사다리를 타고 의뢰받은 집의 지붕을 오른다. 으레 그 집에 가장 높은 꼭지점에 굴뚝이 있다. 굴뚝 구멍으로 그 소제도구를 집어넣어 넣고 빼기를 반복하며 재와 검댕을 긁어내는 것이다.

일견 단순해보이는 작업이지만 내가 이 직업을 가지려는 이유는 분명하고 몇 가지 기본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일단 굴뚝청소부로 생계를 이을 수 있을 정도의 일감이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높은 고층 아파트나 굴뚝 청소가 필요 없는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단독주택의 주거문화인 한국에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벽난로를 쓰고 땔감이 넉넉하고 허용되는 시대가 지나가서는 안된다. 높은 지붕에 오르고 제법 용력을 써야 되는 일이니만큼 나이가 들어 퇴직하고도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여야 한다.
육체노동을 비하하지 않고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유럽에서 굴뚝청소부는 특별한 직업으로 대접받는다. 한국에서 상여나 장의차를 보면 재수가 좋다고 여기듯 독일에서는 아침에 굴뚝청소부를 만나는 걸 행운의 징조로 여긴다. 굴뚝 청소를 게을리하면 화재의 위험을 피해갈 수가 없다.
나는 이 단순하고도 고귀한 일을 하는 굴뚝청소부가 되고 싶다.

내가 이 일이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여기는 이유 몇 가지가 있다.
이른 새벽 지붕 위에 올라 마을 정경을 내려다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지붕에 올라 평화와 자유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멀리 들녘을 물들이는 노을을 감탄하며 하루 일과를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이 든 소제도구와 작업복 그리고 장갑만 있으면 된다. 언제 말썽을 일으킬지 모르는 노트북도, 매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도 필요없다.
멀리서 들여오는 교회 종소리로 하루 일과를 닫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따뜻한 차와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 도움을 반기는 사람들의 감사함을 느끼고 나의 노동으로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보람으로 미소를 띄며 잠들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굴뚝 청소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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