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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11. 2022

오겡끼데스까~~~!

“제가 1%로 보이세요?”
이실장이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물었다. 대가리도 꽁지도 떼어내고 몸통만 들입다 내민다.
“그게 뭔 말이야?”
“제가 대한민국 상위 1%라니까 하는 말이죠”
말인즉슨 그 어렵다는 꿈의 ‘종부세’를 내게 됐단다.
이실장은 20년 넘게 나와 같이 한 동생같은 직원이다. 한국에서 생존하려면 부동산에 눈을 떠야 한다며 젊은 시절부터 부지런히 이사를 다녔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아파트 두 채를 가지게 됐는데 매도 타이밍을 놓쳐 억울하게 백만원 넘는 종부세를 내게 됐다면서 여간 분개하는게 아니었다.

제법 긴 사연을 들어보니 화를 낼만도 했다.
“음... 결국 유탄 맞은 거네”
“지금 정부 하는 짓이…. “
한참동안 현 정부와 여당을 비토하는 걸 묵묵히 듣고 있었다.
“민주당 저것들…. 저는 이재명이 싫어요”
불똥이 대선으로 튄다.
“그래 그래. 너는 윤석열이 찍으면 되잖아”
“윤석열이는 더 싫고요….”
“그럼 너는 누굴 찍냐?“
“허경영이나…. 아니면 안철수?”
예전 같으면 엎지른 쌀알 줍듯 꼬치꼬치 가려내고 주웠을 얘기인데 그도 이제 쉰을 바라본다.
“소장님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나는 보수주의자라….”
“에이... 아니시잖아요”
“왜 아니냐? …….”
나는 탁자에 놓인 커피잔 받침 두개와 트레이를 내 앞으로 끌어왔다. 극우가 보수를 참칭하다보니 무게중심이 옮겨져 보수가 진보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그것들로 설명했다.
“음.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까……”
커피가 식어가듯 그가 뿜어대던 열기도 차츰 가라앉았다.

그날 새벽에는 격주마다 가지는 독서모임이 있었다. 2022년 첫 모임의 책은 조선희'작가의 <상식의 재구성>이었다.
햇수로 5년째인데 그동안 에세이, 철학, 심리학, 자기계발서, 소설이 대부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사회과학서다. 게다가 560쪽이다. 우려했던대로 참석률이 떨어졌다. 20대는 1명이 참석했다.
토론은 책을 추천한 사람이 연다. 이 책은 내가 추천을 했다.
“그동안 다뤘던 주제가 뭐랄까…. 고공비행이었다면 한번쯤은 착륙해서 땅을 구를 필요가 있지않나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의 컬러가 선명함에도 자신의 주장이나 판단을 강력하게 어필하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지요. 차분하게 현실과 현상에 거리를 두고 사실을 확인하며 역사적 맥락을 더듬습니다. 많은 공부와 자료조사가 따랐을 것이 분명합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사색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둡니다. 저는 그게 참 좋았습니다”

참석자들의 소감이 이어졌다.
“참 잘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두꺼운데 잘 읽히는 첫번째 이유는 작가의 공력이다. 자기 주장을 뒤로 하고 독자 스스로 생각하도록 자제한다”
“신문기자와 편집장 출신이라는 여정이 이번 책의 전체 기획과 호흡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독자를 고려한 내용 배치와 편집, 가장 탁월한 점은 지루하지 않은 전개속도와 깊이다”
“읽기 시작하자 손에서 놓치 않게 될 정도로 좋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작가의 힘이 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최근의 코로나까지 담느라 애쓴 흔적이 보인다. 공들여 썼고 내용이 충실한 좋은 책인데 몇 십년 후에도 다시 읽히는 책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가장 울림이 큰 대목과 토론하고 싶은 내용은 책이 다루는 여러 주제만큼이나 다양했다.
‘독일에 빗댄 한국 사회’ ‘독립운동가 이회영’ ‘남아프리카 미래워크샾’….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몽플레 시나리오 워크샾’을 최고로 꼽은 회원은 절판된 관련서적을 겨우 찾아서 주문했다고 했다.
유일하게 참석한 20대 회원은 부동산과 아파트에 관한 대목을 언급했다. 그는 올해 공공기관에 취업했다. 개인적으로 분가도 해야 하고, 직장에서 임대아파트 유지보수와 관리 업무를 맡다보니 그 부분을 관심있게 읽게 됐단다.
여담으로 현재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한 중압감과 고민을 짧게 토로했는데 여러 회원들에게서 다양한 조언이 쏟아졌다. 모임을 파한 후 자리를 함께 했던 40대 회원이 넌즈시 이런 말을 했다.
“현명하게 잘 대처할텐데…. 그런 상황(과한 관심과 주문같은 조언)이 본인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안그랬으면 좋겠다” 아차싶었다.

내 눈 앞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실감하지 못한다. 내 일로 받아들여야만 심각성을 깨닫는다.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나와 남, 나와 세상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한다. 간격은 거리이고 공간이다. 같은 종의 개체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두가지의 실체적 거리가 존재한다. 개별적 개체간의 ‘개인적 거리’ 그리고 개체와 집단간의 ‘사회적 거리’가 그것이다.
이 거리는 한 개체를 둘러싼 일정한 영역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개인적 공간’과 ‘사회적 공간’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두뇌와 신체 활동을 통해 공간을 인식한다.
즉 인식과 감각에 의존해서 세계를 파악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팔이 닿는 거리, 가족관계처럼 피부 접촉을 허용하는 밀접한 ‘개인적 거리’에서부터 시각이나 청각 같은 ‘거리 수용기관’을 통해야 하는 조금은 먼 ‘사회적 거리’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신체적인 피드백이 없다면 대다수의 사람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환각에 빠질 수도 있다.

또한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인한 다양한 매체와 수단으로 심리적 또는 정서적 거리는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한다.
수시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할 수 있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생면부지의 유명인사와도 문답을 주고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인간에게 더 요긴한 거리는 신체적 활동과 감각보다 정신세계와 인식의 소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느닷없이 날아든 납세통지서에 익히 알던 이웃처럼 대선후보를 소환해서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사회적 공간에서 생긴 공적인 문제를 나의 개인적 거리 안으로 끌어들여 불필요한 간섭까지 하게 된 것이다.

현실 세계와 나의 거리 그 실체를 파악하고 간격을 유지하는 일, 개인적 거리 안으로 끌여 들여야만 하는 사회적 거리에서 발생하는 공적인 문제를 잘 선별하고 판단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저지르는 많은 오판와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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