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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13. 2022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며-1

당시에는 우스개소리에 불과했는데 두고두고 다시 되뇌게 하는 말들이 있다.
“하수가 친 공은 걱정하던 곳에 떨어지고, 고수가 친 공은 원하는 곳으로 간다” 골프를 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가 됐을 것이다.
해저드와 벙커가 도사리고 있는 페어웨이에서 하수일수록 ‘저쪽으로 가면 안되는데, 피해야지’ 작심하고 친 공이 오히려 ‘저쪽’으로 가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흔히 골프를 멘탈게임이라고 부르는 이유고, 의도도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의 동기가 두려움에서 비롯됐다면 결과는 자신이 우려하던 바대로 나타난다.
모텔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중년 남성의 죽음을 두고 수많은 억측과 해석이 오간다. 사인이야 수사 결과로 밝혀지겠지만 그가 최근 정치인과 얽힌 송사로 개인적인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문제가 된 그의 ‘의혹 제기’가 사실관계에 있어 ‘의혹 조작’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나는 참과 거짓을 떠나 그의 옳다고 믿었을 의도가 공포와 고통을 가져왔고, 사실 혹은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일반인의 한계를 무리하게 뛰어넘으려 했던 것이 화근이 됐을 개연성에 주목한다.
 
얼마전 한 대기업의 책임연구원이 자살한 기사를 읽었다.
휴일까지 반납해야 했던 과중한 업무와 팀장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짓눌리다 정신적인 병을 앓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복직을 한달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내와 오간 문자에는 아이 얘기가 많았다. 어린 아들이 아빠를 자주 찾고 운다는 문구가 예리한 화살촉으로 날아와 내게 꽂힌다.
나 역시 그맘때 그랬다. “나중에 당신 후회하게 될 것 같아” 아내는 아이들의 가장 사랑스럽고 반짝이는 시기를 건너뛰는 내가 안타까워서, 아빠의 빈 자리를 늘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대변해서 자주 말하곤 했다.
그와 나는 사회에서 도태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주어진 몫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강박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심장을 파고들어 부정맥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뇌와 신경을 시들게해서 정신병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공황장애라는 질병이 내 옆에서 자살폭탄으로 터져버린 사건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폭탄조끼를 사촌동생이 입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촌동생은 유복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구김살없이 컸다. 집안 막내여서도 그랬겠지만 사랑받고 나누는데 익숙했고 자라면서 꾸지람 듣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무난하게 좋은 학교를 나오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초등학교 첫사랑을 짝으로 맞아 두 아이의 아빠가 됐고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가까운 형제조차 동생이 게딱지 속처럼 녹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고, 영혼이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지 못했다. 으레 사회생활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짐작했고, 그러다 낫게되는 시절감기인 줄로만 알았다. “다시 태어나면 착하게, 좋은 사람으로만 살지 말거라” 부모의 피 토하는 애도사가 붉은 꽃이 되어 유골함과 함께 유리관에 갖혔다.

개인의 삶과 죽음, 치유와 변화를 얘기하는 것은 무척 힘들고 난감하다.
그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봐야 하고 정서적 교감까지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거대한 세상의 일부라서 자칫 세상과 사회문제에 치중하다보면 개인을 놓치게 되고, 개인에 주목하다보면 그것들을 잊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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