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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27. 2022

티켓 끊으셨나요?

"어허 저 양반 나왔네.... 나 또 눈물 나는데..."

"어? 그러네 저 뭐더라... 아! 장사익. 그래 장사익. 근데 형님은 왜 눈물이 나요?"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러지. 그러잖아도 그저께 납골당에서 전화가 왔더라고. 10년이 넘어서 관리비를 내야 한다고... 이제 그만 고향 땅에 뿌릴까 했는데 앞으로 5년만 더 내 나이 팔십까지는 놔둬야겠다 싶어서 어제 관리비 부쳤어. 흐휴 우리 엄니 그 어려운 살림에 나를 그래도 장남이라고...."


머리를 깎던 중이었다. 단골이지만 이발관 사장님의 연세가 일흔다섯이었던 걸 알게 되는 순간이다. TV에서는 장사익이 "꽃구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꽃구경'은 김형영 시인의 '따뜻한 봄날'이란 시의 제목만 '꽃구경'으로 바꿔 부른 노래다.

궁핍한 살림에 늙고 병든 부모를 깊은 산중에 버리던 애절하고 비통한 고려장의 풍습을 그렸다. 자식이 되돌아갈 길을 잃을까봐 솔가지를 뜯어 길에 뿌리는 노모....


두 사람의 대화는 장사익의 노래를 정의한다. 한번도 못들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밖에 안듣는 사람은 없다. 가수의 이름은 가물거려도 노래는 끌로 새긴듯 오래도록 남는다. 음악비평가 강헌은 장사익을 '세기말의 위안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올해 일흔 넷, 장사익은 나이로는 원로급인데 데뷔로는 30년이 안되는 늦깎이 가수다.

가수라는 호칭은 턱시도 차림의 그를 대하듯 어색하다. 소리꾼이 차라리 적합하다.  후배가수는 '장사익'이란 고유명사여야 한다고 했고, 서로가 각별하게 여기는 동년배 최백호는 "제2의 최백호는 나와도 제 2의 장사익은 못나온다."는 극찬을 바쳤다.


데뷔전 15개의 직업을 전전했던 힘든 과거사는 잘 알려진 바다. 장사익의 노래는 한두가지의 수식어로 한정지을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폐부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리는듯 내지를 때는 판소리같기도 한데 어떤 대목에서는 음유시인같기도 하다. 민요같은데 분명 대중가요다. 끌어당기고 밀고 엇박자인듯 아니다.

오늘날 장사익 고유의 노래가 있게 한 공로자가 있다. 프리 재즈 타악기의 1인자 김대환(1933~2004)이다. 60년대 말, 그가 태평소를 불던 시절, 뒤풀이에서 김대환이 노래를 시켰다. 장사익은 동요 ‘송아지’를 불렀다. 듣다 말고 “박자 맞추지 말고 다시 불러보라”고 했다. 다시 불렀더니 “너 인마, 속으로 박자 세고 있잖아!”라고 역정을 냈다. 그때 깨달음이 얻었다. ‘아, 이거구나…’ 싶었던 날이었다. 그때부터 박자를 무시하고 노래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가 말했다. " ‘찔레꽃’도 박자가 없잖아요. 그냥 호흡대로 가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노래를 하게 됐죠.” 김대환의 한 마디가 장사익의 노래가 있게 한 것이다.


김대환(1933~2004)이란 이름은 일반인에게 낯설다. 오래전 나는 김대환의 공연을 봤었다. 정동에서였던 것 같다. 한창 재즈음악에 심취해있을때였으니 나의 젊은 시절이었다.

열 손가락에 스틱 6개를 쥐고 신들린듯 두드리는 그에게서 느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전율을 내 몸은 아직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평소 과잉의 수식어를 못마땅해하는 나지만 그에게 붙여진 '전설적인 드러머'에는 과장됨이 없다. 조용필을 중앙무대로 이끌었고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은 타악기의 명인이다.

그의 호는 '흑우(黑雨)'다. 그 공연에서 탄탄한 팔뚝이 비집고 나와있던 검은 가죽 조끼가 인상적이었다. 온통 검은 무대, 한줄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온 대지를 두드리는듯한 그의 광적인 퍼포먼스에 내 넋은 이미 나가버린 상태였다. 검은 장막에 쓰여진 비스듬히 쓰여진 '黑雨'는 어느새 비가 되어 모든 객석을 적셨다.


김대환과 장사익은 자신을 연마하고 구도자적 삶을 지향하는 면모가 비슷하다. 마흔다섯에 데뷔한 가수 장사익은 말한다.

"요즘은 다들 어렸을 때 화려하게 가수로 데뷔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인생을 배워. 그런데 저는 인생을 배우고 나서 가수가 됐어요. 그러니까 할 얘기가 많아요. 그게 먹히는 거죠. 내가 세상을 모르면 아무리 지껄여도 안 들어요. 요즘 가수 애들 다들 이쁘고 잘생기고 뱅글뱅글 돌고 뒤집어지고 허잖아요. 그러다가 한 2, 3년 되면 다 사라져요. 한때 반짝허는 거지.”

"늦게 시작한 걸 고맙고 소중하게 생각해요. 마흔다섯에 인생을 다시 출발한거죠. 나이들었어도 노래할 수 있다는 꿈을 꾸는 게 얼마나 재밌어요. 일찍 시작했으면 이런 노래를 못 했겠지. 늦은 나이니까 인생의 굽이굽이나 죽음같은 무거운 주제를 노래할 수 있는 거예요. 젊었으면 인기를 바랐겠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노래만 찾고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만 생각한단 말이지."인생살이를 알고 노래를 한 그이기에 죽음을 통해 삶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장사익을 무대로 이끈 평생의 동반자는 임동창이지만 그의 음악스승 김대환은 여러면에서 장사익에게 영향을 끼쳤다.

장사익은 붓글씨를 쓴다. 스스로 낙서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줬던 김대환 역시 서예에 탁월했고 평생 쌀알에 반야심경을 쓰던 세서의 달인이었다. 1990년 전문을 백미 한알에 써 넣어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

몸을 일으킬 힘만 있어도 연주하겠다던 김대환과  무대에서 열심히 노래를 하다가 죽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장사익은 닮았다. 두 사람은 평생을 준비하고 연습했다. 김대환은 세상을 뜨기 얼마전까지 하루 8시간의 연습을 쉬지않았고, 장사익은 젊어서부터 직장을 전전하면서도 놓치않았던 음악공부를 쉼없이 계속해왔다.


내가 찔레꽃 만큼이나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죽편(竹篇)'이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1980년대 후반 서정춘이 허름한 여관방에서 불현듯 떠오른 싯구를 벽지에 휘갈겨 쓴 시에 곡을 붙였다. 5행 37자에 불과한데 밀도와 깊이는 가늠하기 버겁다.

팬으로서 언젠가 장사익이 곡을 붙여 불렀으면 하는 노랫말이 있다. 그 노래는 분명 ‘볍모가지가 나풀나풀한데 건강 조심허구 맛난 거 사먹어라"로 시작할 것이다.

그는 엄마만 생각하면 '먹어라'란 말만 생각난다고 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무학(無學)이라고 했다. 글도 잘 못읽는 엄마가 서울로 유학보낸 아들에게 용돈과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 보낸 편지다. 아버지는 농가의 돼지를 대신 팔아주는 돼지 장사꾼이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두시간을 기다려 다시 재방송을 틀었다.

"여보 뭐해 이리와 봐. 이거 같이 봐. 장사익이 나왔어. 2년만이래. 방송출연 잘 안하는 양반인데...." 주방에 있던 아내를 불렀다.

실수란 걸 금방 깨닫는다. 아니나다를까 훌쩍이던 아내가 '꽃구경'에서부터 펑펑 울기 시작한다. "엄마. 보고싶어... 어엉"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난감해진 나는 "그럼 지금 어머니한테 가서 자고 올래?" 라고 한다. 시계는 이미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다. "있잖아 . 좀 있으면 최백호도 나오고 당신 좋아하는 소향도 나와..." 어째 갈수록 내놓는 대책마다 엉성하기만 했던 밤을 보냈다.


장사익 무대의 부제는 '봄날'이었다. 그는 직접 쓴 '봄날' 글씨체의 형상을  뿌리를 내리고 봄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에 비유해 희망으로 설명했다.

마지막 휘날레를 장식하는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장사익의 '아리랑'은 이렇게 시작한다. "정이월을 다가고 삼월이라네" 이제 삼월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오랜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대중음악의 '장사익류'를 탄생시켰다. 벼락스타도 아니고 운이 좋아 데뷔하기도 않았다. 그런 그이기에 무학인 돼지장사꾼의 아들, 십여가지 직업을 전전하고 실직을 해서 무대에 섰던 장사익의 삼월은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삼월일 것이라 감히 짐작해 본다.


3월 9일, 한반도 땅에 뿌리내린 민초의 간절한 바램이 꽃으로 만개하는 봄이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푸른 기차의 티켓을 이미 예약한 국민이다. 우리 조상이 그랬듯 푸른기차를 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갈 것이다.

"티켓 끊으셨지요 다들? 해외동포는 벌써 다 끊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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