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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27. 2022

언제나 이유는 있기 마련이다

뜬금없는 전화였다. 다음날이 주말이라 새벽에 잠든 내 단잠을 깨운 건 막내동생이었다.

"행님아. 옛날 그 집... 혹시 여기가 아이가? 함 봐봐" 동생이 보내 준 사진에는 낯선 동네가 찍혀있었다. "거기 아닌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침부터 청파동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는가 보다.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동생은 내 자취방에서 같이 지냈다. 그 집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개발이 될 만한 동네는 아니었다. "기사식당 오른쪽 골목으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들어가는 거 맞잖아" "그렇지"


그 집은 효창공원 근처 가장 높은 지대인 그 동네에서도 3층 다가구주택의 맨 윗층이었다.

효창공원과 숙명여대가 옮겨가지 않는 한 산전벽해가 일어날 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방이 두개라지만 하나는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만큼 작아서 우리는 큰방 하나를 같이 썼다. 나는 난간도 없는 그 방 창틀에 앉아있는 걸 좋아했다.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밤이면 별보다 십자가 불빛이 더 많긴 했다.

지하철 역에서 숙대 오르막길을 걷다가 골목을 찾아 들어가는 그 집을 수십 아니 수백번은 다녔을텐데 동생은 근처만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동생은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떠난다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그 바람에 나도 잠이 달아나버렸다.


'한번 찾아가봐야겠네.... 그런데 왜 못찾았을까?' 구비구비 골목을 찾아 들어가는 막다른 끝 집이긴 했어도 나와 동생에게는 이미 익숙한 구조다.

우리는 지방 소도시 고만고만하고 비슷한 집들이 김밥처럼 늘어선 관사촌에서 자랐다. 좁은 골목이 낯설거나 길눈이 어두울 수 없는 환경이었다.

동생이 굳이 옛 자취방을 찾아간 이유도 궁금해졌다. 지난 날의 향수때문이었을수도 있다. 만리재길, 재래시장, 좁은 골목, 오래 묵은 집들. 그 동네의 건축 환경은 서울에서 그나마 고향 동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그 집을 찾지 못한 것은 의외다. 아마 자가용을 타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동생이 보내온 사진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에서 찍은 것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승용차가 있었을리 없다.

때로 문명의 이기는 사람의 지각을 마비시키거나 도태시키곤한다. 어릴 적 쉽게 하던 암산조차도 계산기만 쓰다보면 어두워지고, 전화번호 백개쯤은 거뜬했던 기억력이 핸드폰만 의존하다보면 언젠가부터 외우는 전화번호가 서너개로 줄어들어 있다.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이 또한 그렇다. 아마 잠재되어 있던 지난 시절의 감각과 기억에만 의존했다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철새나 연어에게만 생태적 GPS가 장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뇌에도 장소인식 세포와 건물 인식세포가 있어 통합체계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자들이 밝혀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동생이 옛 자취방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 몇 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복잡한 환경속에서 길을 찾을 때 구체적인 디자인 요소에 의존해 내면에 지도를 작성한다. 이를 인지 지도라고 하는데 랜드마크, 확연하게 드러나는 모서리, 광장, 주요 교차로등 경계가 확실한 길의 조합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좁은 골목과 계단, 샛길로 이어지는 옛 동네에서는 그런 구성 요소들이 부족했을 수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동생이 어느덧 도심에 최적화되었다는 것이다.

그 시절 이후로 동생은 옛 자취를 찾기 힘든 동네 그것도 강남 도심에서 주로 살았다. 우리는 불과 얼마전까지 인간발달단계 초기에만 뇌의 기능 형성이 이루어진다고 알았다. 그런데 21세기 연구 결과는 우리를 둘러싼 건축적 환경과 조경, 도시에서의 경험과 반응에 따라 뇌는 새로운 뉴런을 형성하고 시냅스를 연결하면서 바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바뀌는 것이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고 도시는 인간을 변화시킨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건축 환경에 영향을 받고 산다.  

삶 속에서 의식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인지와 의사결정, 행동은 모두 이러한 건축환경 경험 즉 정서와 감각, 서사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내가 공원길로 이어지는 수도권의 아파트를 떠나 서울 도심 빌딩 숲에 촛대처럼 꽂혀있는 주상복합빌딩으로 이사가지 않듯 동생 역시 도심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의 삶 거의 전부를 철창보다 막힌 좁은 창 뚫린 완고한 빌딩, 지위가 오를 수록 높은 층을 차지하는 숨막히는 조직에만 몸 담았던 사람에게 너른 뜰과 높은 산이 내려다보는 나즈막한 건물은 언감생심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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