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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n 19. 2022

저랑 블루스 한번 땡기실까요?

오랜만에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얼마전 종영된 '우리들의 블루스'덕분이다. 종영된 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인기때문인지 사람마다 감평이 무지개처럼 다채롭다.


성별로도 다르고 연령별로도 나뉜다. 세대와 성별을 공유했어도 공통분모를 찾아내기 쉽지않다.

내가 좋았던 장면이 누군가에겐 식상하거나 신파조로 느껴지고 배우와 연기에 대한 호불로도 분명하다. 내가 놓친 김혜자의 패션 지적부터 작가에 대한 평가도 천양지차다

나와 공감대를 가져서가 아니라 너무 달라서 내가 몰랐던 지점을 가리켜서 좋았다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란성 쌍둥이같은 두 친구가 있다.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동생들이다.

이란성 쌍둥이 비유는 참으로 적절하다. 분명 다른 성격이어서 생각이 같아도 표현 방식이 다르다. 얼핏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데 촛점은 하나로 모이는 식이다.


이 두 친구와의 대화는 늘 즐겁다. 그런데 대화의 양상을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 친구는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처럼 상대의 말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을 정도인데 반해 또 한 친구는 맥락을 짚어내고 얘기가 옆길로 새는 법이 없다.

새로 비유하자면 한 친구는 주변에서 지푸라기와 흙을 물고 와 침을 섞어 둥지를 짓는 제비라면 또 한 친구는 나무에 구멍 구멍을 파서 보금자리를 만드는 딱다구리다.


그도 그럴것이 전자는 세상일에 관심도 많고 문학, 음악,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데 가끔 갈지자로 걸을 때가 있다. 후자와의 대화는 일직선이다. 앞만 보고 걷는 것이다. 다분히 프로페셔널하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런데 어차피 어디로 갈 건지 무엇을 지으려 하는 지는 다를 게 없다.

인생을 대하는 진지한 고민이나 일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비할데 없이 훌륭한 친구들이다.


한 친구는 내 말에 "그런데 ..." 브레이크를 밟기 일쑤고 또 한 친구는 늘 "그렇죠..."라며 엑셀을 밟는다.

그런데 주관은 뚜렷하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고 좋은 향의 여운이 남는다.   

반박이든 공감이든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과정 속에서 다른 생각을 읽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신선함과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다름에서 배우는 건 더 크다.

그런 대화에서는 결론과 합의를 볼 이유도 없다. 아이들 선물 교환하듯 각자의 선물꾸러미를 챙겨가는 것이다.

미처 하지 못한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은 선물상자를 열어볼 때의 흥분과 기대감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세상사가 이랬으면 좋겠다. 정치가 문화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런 다양성과 개성을 녹여낼 수만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내 생각이 옳다고만 고집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고 핏대만 올릴게 아니라 한 풀 숨을 죽여도 괜찮을 것 같다.


삶은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이 아니라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어가는 평탄한 길이다. 내가 앞만 보고 걷는다고 길가에 핀 들꽃에 잠시 한눈 파는 걸 나무랄 수 없다.

우리는 각자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 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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