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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n 19. 2022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누벼야겠네요. 어 여기도 좀 그렇네"

"네. 원래 천이 그래요. 그럼 안쪽에 덧대는 건가요?"

"그래야죠. 혹시 잘라서 반바지로 입으시면 어때요?"

"아뇨. 지금 기장이 좋아요. 그냥 밖에 덧대면 안될까요? 그게 더 오래갈 것 같아서..."

"그럼 누더기가 될텐데... 비슷한 천이 있을래나."

작업대 한 켠에 밀쳐져 있던 천무더기를 뒤적거린다.


"달라도 돼요. 아무 상관없어요. 제가 누더기를 좋아해요."

"호호... 독특하시다. 네모나게 오려서 덧대는게 어쩌면 더 나을것도 같네요. 아! 뒷주머니 다 쓰세요? 그걸 잘라서 쓰면 되겠네"

"근데 어차피 색깔이 틀려요. 주머니는 색이 안바래서 짙거든요."

"어 진짜 그러네. 왜 이렇지?"

"천연 염료래나 뭐래나. 색이 바랠 거라고 미리 말해줬던 거니까. 아무래도 같은 천이니까 더 낫겠죠. 이왕이면 왼쪽 뒷주머니 없애서 그걸로 덧대주세요."

"네. 그럴게요. 이번 주중에 해놓고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남은 조각은 챙겨주세요. 나중에 쓰게. 그럼..."


동네 수선집에 들러 수선을 부탁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애용하는 바지 무릎팍이 닳아 찢어졌다. 까실한 감촉과 성긴 직조가 한 여름 나기엔 그만이다. 살짝 복숭아뼈가 드러나는 잠뱅이같기도 하고 스님 승복바지 같기도 하다.

며칠 전 무심결에 입느라 발을 집어넣는데 엄지발가락이 허실허실해진 무릎께를 뚫고 나온 것이다.


집, 탁자, 옷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세월의 바람이 패고 간 골만큼 자연스러운 문양을 보지 못했다.

다 쓰러져가는 한옥의 고재가 비싼 값에 팔리고 일부러 탈색시키거나 찢은 청바지가 유행하는 것도 그 오랜 시간과 묵은 손때의 가치를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는 반증이다. 하지만 숀 코네리의 멋진 주름을 한국의 뛰어난 성형술로도 만들어 낼 수 없듯 인공적인 조작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그 바지가 헤지면 덧대고 찢어지면 꿰매서 오래동안 입을 참이다.

누빈 천과 꿰맨 자국이 남다른 애정과 지나온 시간의 궤적으로 남아도 멋질 것 같다. 세상에 나와있는 물건 중에 온전한 나만의 것, 나만의 패션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돌아가신 법정스님이 뉴욕에 가셨을 때. 누비고 꿰맨 승복을 보고 패션 피플 뉴요커들이 어디서 샀냐면서 관심을 보이고 찬사를 보냈다고 해서 꼭(?) 그러는 건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쫒겨 묵은 것은 외면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나를 지나쳐 간 물건 중에 애뜻하고 정이 가는 것들은 오래동안 지녀도 좋을 것 같다.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한때 부처님을 존경하는 왕비와 궁녀들이 1000벌의 가사를 승가에 보시하였다. 그것을 본 왕은 이렇게 많은 가사를 받으면 기존에 있던 가사를 어떻게 할까 궁금해서 장로비구에게 여쭈어 보았다.

"낡은 가사는 깔개로 씁니다."

"깔개가 낡으면 버리시겠지요?"

"아닙니다. 깔개로 쓰다가 낡으면 걸레로 씁니다."

"그렇다면 걸레로도 못쓸만큼 낡으면 버리시겠지요?"

"아닙니다. 걸레로도 쓰지 못할 만큼 낡으면 진흙을 바르는데 섞어서 씁니다.“ -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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