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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n 19. 2022

이 남자와 사는 법

출출해지는 심야시간대 먹방은 고문이다. 누가 얼마나 맛있게 많이 먹나 먹보 네사람이 출연하는 프로였다.

으레 스킵하는데 어제는 메뉴에 코가 꿰였다. "재첩국과 재첩비빔밥"이었다.


어릴적 새벽 골목길을 깨우던 아지매의 "재칫국 사이소~!"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다. 뽀얗고 시원한 국물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게다가 지금은 채첩의 제철이 아닌가(5~7월) 시계는 새벽 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하동가는 교통편을 검색한다. 먼길 여행은 기차가 최우선이다. 당연히 직행은 없고 KTX와 무궁화를 연계해야 한다. 족히 6시간은 잡아야 하는 코스다. 순천에서 갈아타면 된다.


같이 가겠느냐고 곤히 자는 아내를 깨워서 물어 볼 수는 없다. 일단 저지르고 볼 참이다. 여의치않으면 혼자라도 다녀올테니까. 아침 일찍 깨워서 잠결에 정신차릴 틈없이 몰아붙이면 아내는 어벙벙한 채로 따라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런데 아침 출발편이 매진이다.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을 먹으려면 아침 기차편이 좋은데 만석인 것이다.


아쉬운대로 플랜 B에 돌입한다. 수도권에 있는 재첩국 식당을 검색한다. 그리 많지 않다.  

강남 대치동에 있는 식당이 먼저 뜬다. 아무래도 강남 직장생활할 때 들렀던 곳인것 같다. 그리 인상이 깊지는 않았다. 김포의 한 식당이 물망에 오른다. 후기도 괜찮다. 올커니 갈 곳은 정해졌다.


"재첩국 먹으러 가자"

"갑자기 왠 재첩...?"

"먹고싶어서.... 얼른 챙겨"

아내는 깨자마자 거슴츠레한 눈으로 채비를 서두른다. 한두번 당한 게 아니니 이제는 이골이 난 것 같다.

식당으로 가는 차안에서 자초지종을 얘기해준다.

"그래서 하마터면 오늘 하동 갈 뻔 했구나"

"늘 그렇지. 뭐... 오늘은 여기 먼저 가보자. 가까우니까..."


지금은 섬진강 재첩이 유명하지만 오래전엔 낙동강에서도 많이 났었다. 아마 내 어릴적 먹었던 '재칫국'은 낙동강 산이었을 것이다. 낙동강하구언 공사로 이제는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재첩국과 비빔밥이 함께 나오는 메뉴를 시켰다. 재첩은 씨알이 작은 민물조개다. 곰탕처럼 우러나오는 뽀얀 국물을 최고로 치는 음식재료다. 비빔밥은 조연이라고 봐야한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산지에서 맛보는 정도는 아니지만 급작스레 찾아서 먹기엔 괜찮다. 마지막 남은 국물 한방울까지 들이키니 오랫동안 방치했던 마당 청소를 끝낸 때꾹물이 수채로 쓸려내려가는 것만  같다.


"아무래도 산지에서 머니까 냉동을 쓸 수 밖에 없으시죠?" 계산을 하며 건네는 내 말에 주인장은 그저 희미한 웃음을 띄울 뿐이다.

수긍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생물을 썼다면 푸른 기운이 도는 우유빛인데 조금 더 말갛다. 그래도 예전 제주에서 맛봤던 시원찮은 재첩국보다는 훨 낫다. 분명 거긴 중국산이었을 것 같다.

최근에는 국내산 재첩 생산량의 대부분이 새만금 방조제에서 난다고 한다. 김포 식당의 재첩이 새만금산일지도 모른다. 간판은 '하동'을 표방하고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때 맛있었지? 잘 따라 왔지?"

"응. 근데 쪼끔 아쉽긴하다. 생물을 안써서 그런것 같아"

"그러니까 하동 가려고 한거지. 기차편이 매진만 안됐어도...."

"가지. 갔으면 더 좋았을껄... 좀더 알아보지 그랬어. "

"그래? 그럼 내일 차편 알아볼까?"

"엉???"


나는 오늘 아침 재첩국을 먹었다. 심심하면서 그윽하고 그윽하면서 개운한 채첩국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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