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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l 09. 2022

재즈같은 만남

살아가면서 한동안 안보면 보고싶고, 소식이 뜸하면 궁금해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리 코로나 터널을 지나왔지만 문자나 톡은 왔을텐데 종무소식인 분이 계셔서 전화를 드렸다.

드문 인연이다. 채권단 모임에서 만나게 됐으니까 (자료를 뒤져보니 벌써 10년이 지났다. 벽산건설이 그 즈음 부도가 났다.)

그 형님은 나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큰 액수가 물린 회사의 전무이셨고 나는 채권단 맨 뒷자리나 서 있어야 할 정도의 작은 회사 대표였다.(그래도 내게는 꽤 큰 액수이긴 했지만...)


큰 어른답게 부도 건설사엔 합리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채권단은 자제시키는 모습이 참 좋았다. 개중에 내 얘기를 잘 들어주셨는데 우리 둘은 이후로 개인적인 인연을 유지하는 사이가 됐다. 뭐 채권은 당연히 제대로 회수할 수 없었지만....

"형님 제가 적조했죠? 죄송합니다. 하도 전화가 없으셔서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잘 지내고 있죠? 나야 뭐..."

(있'죠'? 존대말을....) 이런저런 안부를 여쭙다가 눈치를 챘다. 내가 누굴까 궁금해하면서도 미안해서 못물어보고 계시다는 걸.....

"저 문성훈입니다. ooo의 문성훈"

"아! 성훈이.... 허허허 실은 전화기를 잃어버려서.... 사람들한테 연락도 못하고 있었어.  그래 어떻게 지내? 아직도 인테리어 하지?"

"그럼요. 제가 뭐 다른 거 하겠습니까. 한동안은 강의도 하고... 본업은 그대로죠. 형님은 그 회사 그대로..?"

"내 나이가 몇인데 은퇴했지. 지금은 유유자적 조용히 보내고 있어"

"그러시군요. 그 섬... 친한 분이 계신 죽도는 가끔 가세요?"

"한 몇 개월 못가고 있네. 참 내가 그랬지. 같이 한번 가자고..."

나는 그 분의 아픈 가족사까지 잊지않고 있다. 금지옥엽 딸을 잃으셨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재원이었는데 아마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가슴에 품고 사실 것을 알기에 나는 당신이 말씀하신 이후로 한번도 되묻지 않았다.

"언제든 와. 소주 한번 하게. 나 부산 내려와 있어. 해운대......."

"네. 부산 내려갈 일 자주 있으니까. 뵈러 가겠습니다."


서울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동네가 몇 군데 있다. 부암동도 그 중에 한 곳이다.

오늘은 그 곳에서 또 한분의 형님과의 저녁 약속이 잡혀있다. 일찌감치 길을 나서서 약속장소인 식당 근처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두어 달 만이다. 한달에 한번은 만나자고 했는데 한동안은 지켜지다가 역시 코로나가 헝클어뜨려놨다.

나는 남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지나치게 솔직한 편인 게 분명하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늘 설렌다. 무슨 얘기를 할까. 어떤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술이 곁들여지겠지? 늘 첫 미팅을 나가는 십대처럼 살작 달뜨게 마련이다.


원래는 지난 주에 잡혀있었는데 호우가 내려서 내가 미루자고 한 약속이다.

'지금도 우주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시는 중일까? 아냐 손주들 재롱 보느라 여념이 없다셨지.....'

고향  모교선배시지만 나와는 10여년 터을이 지는 분이다. 우리는 둘 다 사회생활이나 동문모임 인싸에서 어느 시기부터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독자노선을 걷는다는 점에서 닮았다.

사상과 철학(이건 너무 거창한 표현이지만...), 성격과 취향까지 서로 거스를게 없는데다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소중한 멘토같은 분이다.  평소 술을 드시지 않는데 나를 만나면 기꺼이 몇 잔을 드셔주시니 그 또한 감사하다.

내 깜냥에는 많아도 한 사람도 없어도 곤란한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의 분들이다. 많으면 내 안으로 잠길 시간이 부족하고 아예 없으면 독선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그보다 귀한 분들이 또 있을까.


음 재즈..... 음악까지 딱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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