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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l 09. 2022

누구에게나 아낌없는 애정과 투자를 하는 대상이 한가지쯤은 있다. 노점에서 콩나물 값을 깎는 아주머니도 백화점에서 밍크코트 값을 치를 때는 더없이 우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는 안경이 그런 물건이다. 내 개인사에서 '눈'은 처연한 서사다. 그러니 '안경'이란 물건이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커피맛보다는 가격표부터 보고 카운터 앞에서 할인혜택 카드를 뒤지면서도 안경에 대해선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렌즈라고 콕 찍어 말해야겠다.


지난 주 시력이 더 안좋아진 것 같아 렌즈를 교체하러 갔다. 안경점을 찾을 때마다 20년 넘게 만나는 서선생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렌즈가 너무 깨끗하네요. 정말 이런 분 뵙기 힘든데..... 물론 이전 렌즈도 보관하실거죠" 그런데 이번에는 시력이 오히려 조금 좋아져서 그렇단다. 늙어서 수정체 근육의 탄력성이 떨어진 탓이라는 것이다.


나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타월로 렌즈를 닦지 않는다.

아침 루틴 중 하나가 렌즈를 씻는 일이다. 먼저 흐르는 미지근한 물로 안경을 한번 씻는다. 그리고  스프레이로 주방세제를 희석시킨 물을 렌즈 안팎에 뿌린 후 다시 흐르는 물에 씻어내면 1차 완료다. 큰 물방울을 살짝 털어낸 후 드라이기의 찬바람으로 말리면 끝이다.

그런 내게 공중화장실에 비치된 손말리는 드라이기는 참으로 유용한 도구다. 비누거품으로 안경을 씻고나면 더 쉽게 말릴 수 있다.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선천적으로 만족스런 신체의 한 부분이라면 머리카락이 아닐까 싶다.

젊은 시절엔 머리숱도 적은 편이고 가늘어서 불만스러웠는데 나이가 들수록 흡족하다. 여지껏 염색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치 몇 가닥이 보이긴하지만 염색한 적이 없다는 말에 다들 놀랜다. 모계 유전자인게 분명하다. 어머니 역시 흰머리가 늘긴 했지만 염색할 정도는 아니고 외할머니는 여든을 넘기고도 검은 머리가 다시 나셨다고 들었다.

시원찮은 시력에 독한 염색약까지 써야 했다면 무척 난감했을 것이다.


아내에게서 늘어가는 새치를 보면 아련하기도 한 것이 기분이 사뭇 묘하다.

장모님은 하얀 눈을 덮어 쓴 듯한 백발이다. 나는 반짝이는 그 하얀 머리칼을 좋아한다. 그런데 한번도 아내의 백발을 상상해보진 않았다.

그녀는 새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풍성하고 건강한 모발로 내 사람이 됐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 사랑을 물어보면 마치 길안내를 부탁받은 낯선 도시의 이방인처럼 당혹스럽고 난감하다.

나는 '사랑'이란 단어에 선친의 폐 X-RAY 사진을 떠올리곤 한다. 고교시절 폐결핵을 앓았던 당신의 폐 한 귀퉁이에는 커다란 눈송이같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후일 그 흔적때문에 폐암을 늦게 발견하게 된 것을 알았다.

'혹시 사랑이 그런 것은 아닐까?' 심하게 앓고나면 더 큰 사랑, 또 다른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흔적같은 것 말이다.


어쩌면 사랑이 거짓되고 바닥에 뒹구는 과자봉지가 되어버린 시대라서 추앙이 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응원하는 것이 추앙이라면 그마저도 그녀가 보여준 게 전부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이 늘 모호한 나는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다. 알듯 모를듯 구름 위에 있던 추앙이 응원이라는 땅의 언어로 내려앉듯 사랑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그런데 책에서도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사랑은 아지랑이같고 무지개빛 총천연색중 어느 하나인 것만 같다. 어쩌면 나같은 사람은 영원히 사랑을 모르고 죽을 수도 있다.


그저 삼십년을 바라보는 세월동안 내 눈만큼이나, 렌즈 다루듯 그녀를 애지중지했던가 자책하는 것이다. 아직은 까만 내 머리카락에 만족해하면서 늘어가는 그녀의 새치를 그저 귀엽다고만 한 것은 아닌지 문득 미안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안구 근육이 느슨해지는 것처럼 생활의 긴장이 풀어지기를 바란다. 예민함은 칼날같은 시침에 깎여 무뎌지고 짜증보다는 넉넉함이 배여들게 해야겠다.

예민, 까탈, 짜증, 독선, 돌발 그런 것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이다.


하얀 눈이 내려앉은 그녀의 머리칼은 여전히 아름답고 빛이 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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