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Jul 12. 2022

글쓰며 배우며

어줍잖은 글이라 막 쓰게 되고 거름망에 걸러내지도 않는데 그래도 늘 조심한다.

일부러 들이는 습관이 있고 가려쓰는 단어들이 있다.

떠오른 문장이나 쓰려는 주제를 메모해 둔다. 쉽고 짧은 단문으로 연결하고 '~했습니다' 대신 '했다'로 줄여 쓴다. '그리고, 그러나, 그러므로' 접속사를 배제하는 습관을 들인다.

성별이 드러나는 '그녀' 대신 남녀 공히 '그'라고 지칭하고 '절대로'를 안쓰려 한다.

반면 예전에는 안썼는데 지금은 유연하게 쓰는 것도 하다. "....같다"라는 말이 그렇다.


기억력이 딸려서인지, 잡념이 많아서인지 불과 몇 분전에 떠오른 글감이라도 막상 노트북을 펼치면 뭘 쓰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어디든 흔적을 남겨둔다. 물론 '어디든'을 찾아 해맬 때도 있긴 하다.


의식적으로 단문 위주,  '~했다'체를 쓰는 건 문장을 길게 안늘어뜨리고 압축하고 싶어서다. 되도록 건조하고 함축된 단어를 쓰려고 하면 많은 생각과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나, 그러므로' 접속사를 걷어내려면 상당한 공이 든다.

접속사는 문장을 매끄럽게 해주고 전환을 쉽게 해준다. 일종의 윤활유다. 윤활유없이 기어가 잘 맞물려 돌아가려면 기어 자체를 정밀하게 깎고 제 위치에 고정시켜야 한다.


'절대로'는 손잡이 없는 칼이다. 종이에 손이 베이듯 문장을 베고, 나도 베이기 십상이다. 조심스럽게 다루고 가능하다면 안써야하는 폭력적인 단어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면 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것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다. 불순한 의도로 남발하는 경향이 많을 뿐이다.


과거에는 일상 대화에서도 '~한 거 같다, ~인 것 같다.'란 말을 싫어했다. 책임 회피나 확신 부족처럼 여겼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의도 가령 나중을 고려한다거나 미심쩍다면 하고자 하는 말을 미루거나 삼가하면 된다.

그런데 '...같다.'는 지금의 생각이 나중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겸손이 담겨있다.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자신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않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내 생각이나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담긴 '...같다.'는 아름답기조차 하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데 당신은?'과 같은 숨은 의미가 함께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절대로'나 필요 이상의 단정적인 어투는 대화의 맥을 끊고, 의도치 않게 상대의 이견을 차단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기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절대로'나 '~같다.'를 쓰게 된 것이 좀더 깊은 사유의 결과라면 '그'는 시대의 조류를 따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굳이 구분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교사' '여가수'처럼 성별을 붙이지 않는다. 이름이나 직위를 쓴 다음부터는 '그녀'대신 '그'라고 지칭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문법과는 상관없다. 이를 통해서 다분히 고루한 나의 의식이 조금씩 녹아내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보다 언어를 먼저 배우고 익힌다. 언어는 소리를, 글은 문자를 전달매체로 한다. 인간은 성대를 타고 나지만 문자는 인간 지혜의 소산이고 종이의 발명으로 확산됐다.

언어는 아무래도 활용의 문제다. 글은 거기에 깨달음까지 얹혀져 있다.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어려운 건 문자로 남겨져서만이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 한번 더 생각을 다듬고 배우게 되니 낮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당연한 것 아닌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