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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l 14. 2022

시끄럽다라는 말

"이건 또 무슨 드라마야? 저 탈렌트는 못보던 얼굴인데.... "

당신은 자식의 한마디에 지난 줄거리와 탈렌트의 연기평까지 빠트리지 않는다.


"말도 안돼. 그런 일이 있겠어? 왜 하필 그렇게 엮이고 그 사람이냐고.... 하여튼 드라마는 안된다니까"

"세상에 라별 일이 다 있는데 이런 일이 없긋노? 니가 몰라서 그렇지......  마. 시끄럽다."

늘 반복되고 정해진 수순이다. 슬쩍 관심만 보여도 당신은 모든 걸 들려주고 내어준다. 그렇게 모든 걸 받고서도 불측한 아들인 나는 파장에 꼭 시비를 건다.

그렇게 해서 당신의 "시끄럽다!"거나 "오냐 니 잘났다." 심지어 "참말로 느그 집으로 안갈래!" 역정을 들어야지 왠지 개운하다.


"이 노래 함 들어봐라." 아니나 다를까 트로트다.

"어머니 무덤앞에 외로운 할미꽃 이자식은 바라보며 눈물집니다....."

다른 건 둘째치고 가사에서 수 틀리기 시작한다.

"이 노래 제목이 뭔데?"

"할미꽃 사연인데 가수가... 이 노래만 들으믄 너그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살짝 눈물이 비치시는 것도 같아서 또 시비를 건다.

"가만보면 트로트는 맨날 똑같애. 그게 그거 같고... 나훈아 홍시나 이거나... 하여튼 트로트는...."

"니가 몰라서 그렇지 트로트가 얼마나 한국인 정서를 잘 담아내는데......성은이(사촌 누나)도 니 맨크로 그래쌌드만 나이 들믄서 지금은 이찬원이 팬이 되가꼬 콘서트란 콘서트는 다 댕기고.... 마 시끄럽다! 노래도 모르는 기"

나는  또 "시끄럽다"란 말을 듣고야 만다.


어머니의 역정이나 타박은 좋은 신호다.

톤이 높을 수록, 강경할 수록 건강하신거다.

간혹 당신이 "그러게.... 안그렇겠나." "세상 일이 다 그렇지 뭐" 바람 새듯 꼬리를 감추는 반응을 보이면 내심 불안하고 안절부절하게 된다.

나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돌팔이 의사가 되어 이런 식으로 어머니의 건강진단을 한다. 내게 있어 시비는 의사의 문진같은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시끄럽다'란 말을 들어야 안심이 된다.


지난 이틀을 어머니집에서 출퇴근했다. 이사한 후 강남 사무실과는 지하철 한 구간, 도보 거리다.

하루는 작정을 했었고 또 하루는 호우를 핑계삼아 더 보냈다.

어느날 잠시 안부 전화가 뜸했더니 당신이 전화를 하셨다. 긴한 용무가 아니면 전화를 안하시는 분이다.

"바쁘나? 혹시 니 별일 있는거 아니제?"

앞뒤 자르고 본론이다.

"별일 없어요."

"그람 됐다. 뚝....."

당신 용건만 말씀하시고 바로 전화를 끊는 버릇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통화료가 청구되던 시절의 유산이다. 그 다음날 어머니집으로 왔다.


첫날 아침에 통화하시는 내용을 듣자니 식사 약속이 미뤄진 것 같았다. 스피커폰이라 안들을 도리도 없다.

"왜 친구들하고 외식 좀 하시지..." "순자이모가 아프다네..... 갸 빼놓고 우리만 묵을라니까 좀 글타"

"뭐 드시기로 했는데?"

"오장동인가 그기서 냉면 묵자캐서...."

"그럼. 모처럼 마음 낸 김에 오늘 저녁에 같이 시원한 콩국수 먹으러 가"

"싫타. 니는 집밥 좋아하면서... 콩국수는 무신..... 날도 더븐데. 안나갈란다."

"나중에 좀 일찍 퇴근하면서 전화할께."

"야가요. 안간다니까"

"한 4~5시쯤 전화할께."

당신이 싫다시거나 말거나 이런 일에는 내멋대로 군다.


식당은 시청역 근처다. 지하철로 이동했다. 당신은 안가겠다는데 내가 성가시게 군다고 타박을 하신다. 한번 갈아타야되니 승용차로 모시지 못한게 마음에 걸려 괜한 흰소리를 하게 된다.

"이봐. 지하철이 얼마나 시원해. 그렇게라도 운동삼아 걸어야지. 이게 다 내가 효자라서 그런 거라니까"

"지난 겨울에 세상 효자가 다 얼어죽는가비다. 니가 효자그로....."

어머니는 에어컨을 전혀 틀지 않으신다. 혼자 계시면서 당신이 내지도 않는 관리비 정확히는 전기료가 더 나올까봐서다. 관리비를 내는 동생도 극구 말리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식당에 다다를 즈음 나는 단단히 오금을 박았다.

"엄마. 드시고 난 뒤에 쿵국수가 뭐 별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냐는둥, 왜 이리 비싸냐는둥 하기만 해 봐. 가만 안둬.... 진짜 맛있다니까. 일단 한번 드셔 봐"

다행히 드시는 걸 보니 흡족하신 것 같았다. 한그릇을 말끔히 비우시고는 속삭이듯 말씀하신다.

"3분의 2는 남긋다."

마진폭이 크겠다는 의미이자 비싸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별 소리를.... 다른 음식은 안그런가 뭐."

"근데 아까 그 사람들은 와 콩국을 남길꼬. 그기 진국이던데..."

옆자리에서 먼저 식사하고 나갔던 젊은 커플의 그릇을 보셨던게다.

맛있으셨다는 평가로 듣는다.


이튿날 예의 친구분과 통화하시는 내용을 들었다.

아마도 그 분은 취소된 어제의 식사 약속이 아쉬우셨나보다. 한 사람이 빠져도 나머지 사람은 모이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싫다고 하셔서 무산된 것이다. 그런데 나와 함께 외식을 했다는 어머니 말씀에 퉁을 주신다.

"니는 우리하고는 안묵고 아들하고는 묵나? 니 참말로 이리할래?......"  

"아. 그라모 다시 약속 잡으모 되지.... 우리 큰아들이 하도 가자캐서... 맛있대.  고소한 기... 거 한번 가자"

'우리 큰아들'이 먼저이고 콩국수는 나중이다.


두 분의 전화 통화가 끝나자 내가 그랬다.

"맛있으셨구만... 진작에 그렇다고 하지. 그럼 다음번엔 기가막힌 평양냉면집으로..."

"시끄럽다! 집이 젤이다. 와 나가노"

또 반가운 '시끄럽다.'다. 뭐 당신이 그러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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