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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27. 2022

오늘 하루는 맛있으셨나요?

손끝이 매운 사람, 시선을 멀리두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다. 손끝이 야문 이는 요리를 잘하고 그림을 멋들어지게 그린다. 멀리 보고 시야가 넓은 사람은 자신의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다.


우리를 창조하신 그 분은 공장화된 설비를 갖추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철저히 수작업에 의존했고 부속도 직접 만들어 쓰셨다. 그렇다보니 누구는 두개골 안을 충실하게 뇌로 채우고 또 누구에게는 촉각이 민감한 손을 끼우거나 망원경급 안구로 조립하셨던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모든 걸 갖추지는 못했고 못났다고 손가락질 받는 인간에게도 발현되지 못했을 뿐 타고난 재능이 한가지씩은 있다.

그 분은 각기 다른 인간을 만드셨으되 허투루 만들지는 않으셨다. 인간이 불량품으로 전락하는 건 순전히 인간 탓이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존재한다. 선천적 기질이나 남다른 재능으로 혹은 어찌어찌 세상 물결에 휩쓸리다보니 선택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중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거나 숙련도가 요구되는 분야에 종사하게 되면 전문가로 불린다.

나는 '디자이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혹은 '인테리어 전문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자에는 내 정체성이 드러나고 후자는 다분히 직업적으로 들린다. 우리 사회의 전문가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 나는 '인테리어 업자'만큼은 아니지만 '인테리어 전문가'로 불리는 걸 꺼려한다.

나는 디자인을 사랑하고 '디자이너'로 불리길 더 원한다. 내 생각과 나아가 삶 전부를 제대로 디자인하고 싶은 열망이 더 큰 탓이다.


디자인(Design)의 협소한 사전적 의미는 '의상, 공업 제품, 건축 따위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나 도안'이다. 절반 정도만 동의한다.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아름다움' '이로움' '의미' '가치' '변화' '창작' '발전' '활동' 을 내포하고 있다.

즉 디자인이란 '아름답고 가치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의미있는 활동'으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Designer)'는 직업이 될 수도 없거니와 전문가라고 불리는 것도 부적절해 보인다.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고 어느 분야 특히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만큼은 모두가 디자이너로서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 내키는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건 디자인이 아닐 뿐더러 그런 사람을 디자이너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디자인이 내포하고 있는 핵심 요소들을 담고 있어야만 하고 활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끔은 '내가 다시 시작한다면 어떤 직업을 택할까?' 상상해 보곤 한다.

그 직업들 중에 요리사(Chef)가 있다. 나는 요리사가 부럽다. 다분히 내 직업적 삶이 반영됐을 게 분명하다.

모든 요리에는 레시피가 있다. 그런데 같은 메뉴지만 그 맛은 제각각이다. 요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맛, 그 맛을 좌우하는 것은 단연코 요리사의 솜씨다.


'솜씨'라는 짧은 단어 속에는 요리 재료만큼이나 다양한 의미와 깊은 내공이 담겨 있다.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안목, 수많은 레시피를 기억하는 두뇌, 적절한 타이밍을 가늠하는 감각, 도구를 다루는 능수능란한 손놀림,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예술가적 기질,  

무엇보다 여러 재료의 섞임과 다양한 조리 방법으로 완성될 요리에 대한 상상력 없이는 대중의 찬탄을 자아내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요리사만큼 짧은 시간안에 자신의 번뜩이는 재능과 오랜 인고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직업은 그리 흔하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요리사는 자신의 머리와 손 그리고 마음가짐으로 전 과정을 해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인이다. 직접 구상하고 자신의 감각과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요리에서 행복과 삶의 의미까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로 치자면 인테리어는 3D쯤 되고 요리는 4D일 것 같다. 좀더 다이나믹하고 반응 속도가 빠르며 체감도도 높다. 게다가 시나리오부터 연기까지 직접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내가 느끼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의 가장 큰 아쉬움은 직접 만지고 다듬을 수 없는데 기인한다. 그래서 요리사를 더욱 부러워하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손을 빌어 실현할 수 밖에 없다보니 늘 많은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 컨셉을 잡고 디자인하는데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재료를 물색해서 물성까지 파악하고 제작 방법까지 구상해야 한다. 그림과 형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작업 루트를 찾는 것이다.  

게다가 쉼없이 작업자를 채근하고 수정을 반복하고 속을 끓여야 하는 과정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그리 달갑지도 무심해지지도 않는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바램은 한가지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면서 삶을 디자인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덜 시끄럽고 따뜻하며 살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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