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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27. 2022

선(線)의 미학

나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약간의 결벽증을 필요로 한다. 나같은 경우 일상에서는 덜한데 일에 있어서만은 결벽증, 집착증, 완벽주의 기질이 중증이긴 하다. 식당 메뉴 고를 때도 '아무거나'는 싫다.

눈이 보배인지 저주인지 1mm 차이의 수평, 수직이 틀어진 걸 목측으로 알아챈다. 그렇다보니 건축이나 인테리어 현장에서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이는 실리콘 두께까지 신경에 거슬려서 잔소리를 할 때가 많다. 선에 거의 집착에 가까운 결벽증을 보이는 것이다.


정장 입어본지 오래라 그럴 기회가 드물지만 다림질을 잘한다.

비단 나뿐 아니라 군대를 다녀온 한국남자들 대부분은 그렇다. 누가 봐주지도 않을 군복인데 스치면 베일듯 한 칼주름을 잡은 기억들이 있는 것이다.

딱 떨어지는 선, 이어져야 할 선 그리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멋진 선이 있다. 전자의 둘은 장비의 발달로 레이저를 띄워서 맞출 수 있는데 마지막 선은 애매하다. 도면에 그려놓는다고해서 될 일이 아니다. 순전히 감각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마저 디자인한 이의 머릿속에 저장된 그림이니 말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자주 쓰지만 실행하자면 어렵고 난감한 직업이다.  

아무리 인간이 용빼는 재주가 있다한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움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파도의 일렁이는 굴곡, 끊어질듯 이어지고 겹쳐진 산능선을 인간의 손길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게비온은 우리말로 돌망태다. 축석을 쌓거나 방벽을 세울 때 쓰는 외장재로 토목이나 건축에 주로 쓰이는 시공방법이다. 실내로 끌여들였다. 본디 무겁고 거칠게 다뤄도 상관없는데다 꽉채워 쓰는 자재다. 그렇다보니 실내에서 쓰이는 몇가지 난관이 있었다.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극복했는데 쌓은 돌이 만드는 그놈의 선이 신경쓰였다.

작업을 시키다가 예의 그 결벽증과 집착증이 발병하고 말았다. 두 팔을 걷어부치고 직접 쌓았다. 원래 쓰는 돌 무게로 치자면 족히  수 톤은 되는 분량이다.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는 쌓게 하고 상단은 내가 쌓았다.


쥐어짜면 물이 뚝 뚝 떨어질 것 같을 정도로 티셔츠가 땀에 젖었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니 누구 탓도 할 수 없고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흘러 내리는 곡선에 자꾸 눈이 간다.  우영우 변호사가 느낀 '뿌듯함'이 이런 감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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