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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01. 2022

내 행복은 싸구려지만 괜찮아

"옴마, 나 좀봐라, 오메 이것들 호박잎 믹일라고 일부러 사다놨는디 깜빡 잊고 있었네. 그말 안했으면 떠난 뒤에 어째야 쓰가잉 어째야 쓰가잉 그랬을 건디 ..."

사모님이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손바닥을 마주치셨다.


토란국에 코를 박고 감탄사를 연발하던 광주를 떠나오던 날 아침. 내가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꼭 이것만은 어머니에게 배워서 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한 메뉴를 열거하던 중이었다.  

"콩나물 무침, 김장, 쌈싸먹을 때 젓국장 ...." 젓국장 대목에서 호박잎이 떠오르신 것이다.


"몇 시 기차라고 했냐?" 사모님은 힐끗 시계를 보시더니 잰 솜씨로 냉장고에서 호박잎을 꺼내 물에 씻어 찜기에 올렸다. 그리고는 액젓에 마늘, 풋고추 갖은 양념을 해서 작은 통 2개에 나눠 담으셨다.

"풋고추는 좀 더 쪼사서...." 선생님이 도마 가까이 다가가셨다가 사모님 팔꿈치에 밀려나셨다. 말릴 틈도 없었거니와 암만 말려도 귓등으로 들으시니 별무소용이었다.


오늘 아침 하늘빛이 파랬다. 두 분께 톡을 보냈다.

" 어제 저녁에 반주삼아 막걸리를 마셨거든요.

예전같으면 콩나물국을 찾을텐데 호박잎 쌈이 생각나지 않겠어요. 다락방 곶감처럼 저 혼자 숨겨놓고 아껴먹었는데 딱 세장 남았더라구요.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아 쌈거리로 쉰 김치를 꺼내 씻었습니다.

숟가락에 흰 쌀밥 담뿍 담아 천하일미 젓국장 찍어 밥 한공기 뚝딱하고나니 어찌나 행복하던지. 다행히 젓국장은 아직 많이 남아 흐뭇합니다. 두 분을 떠올리며 출근하는 기분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이 사진 한장으로 답장을 하셨다. 베란다에 빨간리본 꽃소쿠리가 놓여있던 유리 탁자. 맞은 편 정원의 녹음이 새삼 그립다. 이내 그 마음을 전했다.

" 아이고 선생님. 그리워서 불쑥 내려가면 어쩌시려구 이러십니까? ㅎㅎ 사진이 아니라 그림입니다."


또 답장이 왔다. 출근 전이신가 보다.

" 하늘이 참 시원하네. ㅇ교수가 앉아서 일기를 쓰던 베란다의 탁자에도 구름이 두둥실 흐르고......

몇 천원의 호박잎으로 오늘이 행복하다면, 프랑스에서 생 거위간을 공수해 와서 푸아그라를 요리해 몇 천만원짜리 와인을 마시면서,

몇 백만원밖에 안되는 와인으로 즐거워하는 초대손님들을 넌지시 바라보았을 이건희보다는 분명, 더 부자가 아닐는지......"


"지당한 말씀이시죠. 저는 이건희의 와인과 푸아그라보다 백아막걸리와 전어회가 100배쯤 더 귀하고 좋습니다.

그 비싸다는 서양 트러플 향보다 손수 만들어주신 젓국장의 꼬롬짭짤한 냄새가 훨 고급스럽기도 하구요.

아무래도 저는 타고난 억만장자 부자같습니다. 저의 행복과 만족은 비싼 돈을 치르지 않아도 되니까요.^^"


내 답변에 함박웃음 짓는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흠...아무래도 이모티콘의 다양성과 활용에서는 사모님이 앞서는군'  선생님 몰래 의문의 1패를 안겨드리며 혼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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