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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03. 2022

생각의 범선을 띄워라

컨셉

유유히 대양을 가르는 항공모함과 호위함들 같다. 큰 땟목이길 바랬는데 스툴의자는 징검다리처럼도 보인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이 우드슬랩 바테이블과 마주치게 된다. 현장 작업이 시작되면 매일, 공정마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데 완공 후에는 여러 위치, 다양한 각도에서 애초의 머릿속 그림과 맞춰 보는 버릇이 있다.

이번 작업의 컨셉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을 고르라면 아마도 이것일 것 같다.


컨셉(Concept)이란 말은 흔하다. 디자인 분야에서 컨셉은 무척 중요하다. 나는 30년 넘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도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주제, 의도, 아이디어등 관념을 일컫는다는데는 동의하는데 디자인 영역에서 컨셉은 좀 더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가령 "포근한...' '깔끔한...' 처럼 감성적일 때도 있고  '모던한...' '클래식한....'처럼 어떤 형태나 양식까지 아우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들었던 구체화하기 쉬웠던 컨셉은 '이런 재즈에 어울리는...' 사막에 구르는 바람처럼....'같은 것이다. 전자는 위스키 바, 후자는 여성 의류 매장이었다.


왜 그럴까? 모호하고 어쩌면 황당하기까지 한 이런 말들이 더 또렷하게 들린다. 자유롭고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상상 속에서 컨셉을 추출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컨셉을 잡고 상상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자신의 작품세계에만 침잠하지 못하고 의뢰인의 요구와 조건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많은 상상 속의 집을 짓고 부순다. 구조화하고 체계화하면서 현실과 조응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칫 길을 잃거나 일관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힘이 컨셉에 있다. 판단과 선택의 지침이기도 하고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주는 순풍이 되기도 한다.

내게 있어 컨셉은 책속의 한 줄 문장, 길을 걷다가 듣게된 카페 음악, 영화 속 한 장면일 때도 있다.


창업자를 위한 공유 오피스 개념의 사무실 인테리어를 의뢰받았을 때 떠올린 컨셉은 '떠있는 서재'였다.

'떠있다'는 '부유한다'가 아니라 '자유롭다'는 의미였다. 혼자가 아니라 '나만의...', '열려있으되 분리된...' 서재를 만들고 싶었다. 의뢰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신뢰했다. 신뢰는 날개를 달아주기도 하지만 잠수부 허리에 채워진 납덩어리 같기도 하다. 자유롭게 상상속을 유영하되 기대치만큼의 수압을 온전히 혼자 견뎌야 한다.


창 밖으로 펼쳐진 창릉천과 북한산 그리고 구름을 보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공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상상의 구름이 뭉쳐 비로 내릴 때에야 비로소 실재의 싹이 튼다.

컨셉을 잡으면 환경과 여건, 예산에 걸맞는 시안을 구상한다. 자칫 과잉으로 홍수가 나거나 부족해서 해갈이 안돼서도 곤란하다.

'떠있는 서재' 덩어리를 슬라이스로 켜서 '부양하는 박스'을 짜고 '흐르는 바닥'를 까는 작업이다.

사방으로 뻗은 생각갈래를 가지치기하는 작업은 무척 중요하다. '더 할게 없는...'이 아닌 '덜어낼 게 없는...' 공간은 오랜 내 이상이자 모토다.

그렇게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감각과 지식으로 환상을 실체화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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