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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21. 2022

두뇌는 명석하나 주의가 산만함

책 한권을 들고 나왔다. 간만에 읽다가 졸았다. 철학서다. 정확하게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감동적인 말씀과 글을 엮은 책이다.

자의로는 집어들지 않았을텐데 읽어야 해서 읽는 중이었다. 그다지 무겁거나 어렵지 않고 가볍고 경쾌한데도 그렇다.

내 무지와 게으름을 탓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문득 반성 모드가 호기심 모드로 전환된다. "왜 그럴까?'


어설픈 내 해석은 이렇다.

초등시절 월요일 조회 시간의 교장 선생님 훈화를 듣는 것 같아서다.

분명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좋은 말씀인데 온 몸을 뒤틀며 따분해했다. 그리고 조회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교실 복도를 내달리지 않았던가.

분명 훈화 중에 '교실 복도에서 뛰지 말라'는 대목을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철학자의 이야기는 어른을 위한 이솝우화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말하는 신기한 동물이 등장하지도, 전혀 있을 법 하지않은 유쾌한 비유도 없다. 언제나 인간이 주인공이고, 지당하며 관념적인데다 알아듣기 힘들다.

그러니 이제 겨우 무지렁이를 벗어날까 말까한 나로선 재미있을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항상 그런 것만도 아니다. 철학은 대체로 어렵다. 어렵다고해서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철학자의 깊은 사유와 통찰에서 나온 한 문장이 우둔한 내 머리통을 내려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가령 이런 문장을 만났을 때 눈이 번쩍 뜨인다.

"우리는 스스로를 우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예찬을 부추킨다.

왜냐하면 천재를 한낱 기적으로서 우리와는 아주 먼 존재라고 생각할 때만 천재가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분명 위대한 지성이 끼치는 영향이 가장 기분좋게 느껴져서 자신이 질투를 느끼지 않을 만한 곳에서만 천재에 대하여 말하게 된다."

 p179~180 <니체 전집7.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나같은 범인은 흔히 범접하기 힘든 뛰어난 인물을 자신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멀찌감치 떼어놓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경쟁하기 버거운 상대에 대한 스스로의 나약함을 위로하고 우리 내면에 도사리는 시기와 질투심을 다스리며 위선을 부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니체의 글을 빌어 '정치인'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우매함과 자만심이 정치인 폄하를 부추킨다.

왜냐하면 정치인을 한낱 행운으로서 우리와는 아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할 때만 우리의 상실감을 달래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분명 허접한 정치가 끼치는 악영향에 낙담하면서 자신의 무지함을 느끼지 않을 만한 곳에서만 정치인에 대해 말하게 된다"


개똥철학도 철학이라고 했다.

내 나름으로는 '철학서'와 '철학자'를 '골프채'와 '유성'에 비유할 수 있다.

나는 귀한 골프채 한 세트를 가지고 있다. 전설적인 골퍼 벤 호건이 만든 명품이다. 물론 단종된지 오래된 모델이고 수십, 수백번 두들겨서 만든 단조헤드다.

정작 중요한 건 골프채란 것이 어차피 쇳덩어리라서 당장 필드에 들고 나가 쓸 수 있는데도 한번도 써보질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무겁고 예민해서 다루기 무척 까다롭고 때문이다. 또한 이는 빼어난 장점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아마츄어 클럽 챔피언급 정도의 실력만 갖춘다면 이 골프채는 조자룡이 휘두르는 청장검이 될 명기가 분명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그 경지에 못미치는 실력이다.

내게 있어 '철학서'가 이 골프채와 같다.  

그 골프채는 현관 신발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데 들락거리다가 한번씩 들여다보며 입맛을 다신다.

서재에 꽃힌 철학서들처럼...


언젠가 딱 한번 까만 밤하늘을 긋는 유성을 본 적이 있다. 아름답고 신비하기까지 했다.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올려다 봤다.  

한번은 다큐멘터리에서 유성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장관을 보기도 했다.

공자, 맹자, 노자, 니체, 칸트, 스피노자같은 훌륭한 철학자는 그런 유성과 같다. 무지의 어둠을 지혜의 빛으로 가르는 사람들이다.  밤하늘에 찬란한 빛을 길게 늘여뜨려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멀리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유성이 쏟아진 지역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현지인들은 물론이고 먼 타국에서도 찾아 온 사람들이다. 차갑게 식은 유성 즉 운석을 줏으려는 것이다. 운석은 무척이나 귀하고 비싸다. 1g에 몇백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물론 싼 것도 있다. 귀한 건 눈밝고 부지런한 사람의 차지가 되기 마련이다.

운석을 줍기위해 황무지나 다름없는 드넓은 지역을 뒤지는 그들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잡설을 늘어놓다보니 잠이 깼다. 나머지 페이지나 마저 읽어야겠다.

'근데 왜 이렇게 두꺼워.... 1,2편으로 나누든가 하지'

초등시절 6년간. 매년 담임은 바뀌어도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생활기록부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적혀있는 문구가 있다. "두뇌는 명석하나 주의가 산만함"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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