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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21. 2022

고부간의 대화법

성균관 대학교를 모르는 일반인은 없겠지만 성균관의 존재는 미미하거나 잊혀진지 오래인 것이 사실이다. 성균관에는 유교 사당인 문묘가 있다. 교육기능은 대학으로 이전됐지만 유교 및 전통 문화 전문 교육 기관으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의 존재가 부각되는 뉴스가 있었다.

화병과 더불어 한국인만의 '명절 증후군'을 일으키고 가정불화의 한 원흉으로도 지목되는 차례상의 표준안을 발표한 것이다.


나는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는 유교의 이같은 변화에 반색했다. 전통을 고집하기보다 현대적인 기법인 여론조사를 통해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방안을 스스로 모색해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가장 보수적이고 고루할 것만 같은 유림 내부의 이같은 시도가 우리 사회에 희망적인 변화가 일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집은 추석 일주일 뒤가 선친의 기제사다.  그렇게 매년 두 번을 지내왔었는데 3년전 가족회의를 거쳐 추석에는 납골당을 찾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어머니의 오래된 제안이었는데 장자인 내가 미적거린 탓에 늦어졌다. 전통을 고집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각자의 삶에 쫓기는 동생들과 어린 조카들을 보고 싶었다. 납골당을 찾는 것도 추석 며칠 전 한산한 기일을 택한다. 올해에는 여러 사정이 겹쳐 나 혼자 다녀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추석 연휴는 모처럼의 휴가기간이 됐고, 기제사는 크리스마스보다 성대한 가족모임 행사로 자리잡았다.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은 두둑하게 용돈을 챙기는 날이기도 하다.


어제가 기제사였다. 그런데 제사를 준비하는 며칠동안 우리집에서는 조금 희안한 상황이 벌어진다.

오래전 어머니와 아내를 비롯한 모두가 간소한 제사상에 동의했고 매년 늘 서로 당부하고 다짐하면서도 막상 펼쳐지는 상황과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같이 준비한다지만 늘 아내의 수고로움 근처에도 못가는 나는 "아냐 줄이자니까. 이건 하지말자니까. 전은 맞춰서 주문하자." 말리는데

아내는 "어머님이 손수 준비해 오시는 게 있는데 어떻게...."라며 어머니 핑계를 댄다. 홀수여야 한다며 다섯종류 전을 부치고, 고기도 소, 돼지, 닭 종류별이다. 조카들이 좋아하는 잡채를 빠트리는 법도 없다.

그렇게 차려진 상차림을 보고 어머니는 "니 참말로 이리 할래? 많이 하지 말라고했는데 또..." 아내를 질책하시는 것이다.

어머니는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다. 힘들어서 다음부터는 나도 아무것도 안할테니 너도 서너개만 올려라" 하시고

아내는 "그렇잖아도 저도 그러려구요."라고 매번 똑같은 대답을 한다.


올해는 대사 한마디가 더 늘긴 했다.

"근데 다음부턴 제가 담근 막걸리를 올릴까봐요" 아내가 되려 메뉴 하나를 늘리는데 정작 "아서라..."하고 말려야 할 당신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신다.


제사를 준비하다 아내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제주(祭酒)로 쓸 술이 안보였다.

"저번에 영훈이(동생)가 사온 술이 어딨지? 안보이네. 사올까?"

"글쎄. 와인은 있는데... 이번엔 와인 올리는 거 어때?"

"아버지가 생전에 와인 드시는 거 못본 것 같은데..."

"아버님도 이제 세련되게 와인 드셔보셔야지. 내가 아버님께 말씀드리지 뭐. 혹시 알아? 더 좋아하실지. ㅎ"

"그럴 수도 있겠네. 이럴줄 알았으면 당신 막걸리 솜씨를 보여주는건데 그랬어"

"난 진작에 생각했었는데 타이밍이 안맞았지 뭐야."

"앗! 여기 있다. 찾았어"


아무래도 어머니 살아 생전에는 쉽사리 바뀌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당신의 내심 흐뭇해하는 미소를 기억하는 동안에는 그리고 동생들 손에 쥐어보내는 음식 보퉁이를 기꺼워하는 아내의 넉넉한 품이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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