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Sep 27. 2022

바베큐와 싱크

화장실에 앉았는데 "흐으음.... 아파"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머릿 속에서 재빠르게 필림이 돌아간다. 스마트폰을 눌러 119를 부를 것인가 아니면 모른척 마저 일을 보고 화장실을 벗어날 것인가?


빛은 소리보다 훨씬 빠르다. 갓난아이는 청각보다 시각 발달이 늦다.

인간의 감각 수용기관 중 시각은 가장 늦게 진화했지만 가장 빠르고 정확하며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라디오는 TV보다 일찍 발명됐지만 소리와 시각의 재생에서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소리는 인간의 청각으로 들을 수 없는 음역대를 재생할 수 있는 반면 영상은 두뇌가 알아채기도 전에 전달되도록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지금 청각과 시각을 시험받고 있다.

전대미문의 외교적 참사로 기록될 대통령 발언이 단초가 됐다. '바이든'이냐 '날리면' 혹은 '말리면'이냐로 나뉘더니 마침내 비교적 또렷한 '이 새끼들이'를 '이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정상적인 청각을 가졌다면 분별할 수 있는 외국어도 아닌 우리말을 두고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이다.


최근 언론 기사에 비교적 생소한 두 단어가 눈에 띄었다. '바베큐'와 '싱크'다.


'바베큐'는 자막등 시각적 정보를 먼저 받아들임으로써 불분명한 소리가 원래와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각인 효과'를 설명하는 실험에 쓰인 단어다.(MBC보도를 의미하는 듯)

조선이 대통령의 발언을 쉴드치기 위해 ‘바베큐성 사전각인 효과'를 꺼내 든 것이다.


'싱크'는  대통령실이 이 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통보한 '윤 대통령 욕설 보도 자제' 내용에 실렸다.

"포럼 행사 당시 대통령 발언 '싱크'에 대해......"

여기서 싱크는 립싱크(Lip-sinc)의 sync (synchronization 의 준말로 멘트를 뜻하는 방송계 속어. 문맥에 따라 발언, 오디오, 녹음소리로도 유추가능)라고 하는데 나는 주방 개수대를 말하는 싱크의 sink로 이해했다.


우리는 눈이 아니라 뇌로 본다. 망막에 비친 그대로의 상이 아니라 뇌가 학습과 경험으로 보정한 지각인 것이다.  

청각도 마찬가지다. 이미 310년 전 '조지 버클리'(1685~1753)는 이를 보이지 않는 마차소리에 비유했다. 사람들은 엄격하게 말해서 마차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마차로 연상되어 온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앞서 화장실에서 들린 신음소리의 예가 그같은 경우다.

최근의 지하철 역사내 여직원 살인사건이 연상되면 119를 부를 것이고, 평소 야동에 심취한 사람이라면 모른 척 했을 것이다.  


아무리 국내에서 영어회화를 잘 배웠어도 현지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성우나 선생님의 또렷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발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몇 개 단어가 귀에 들어오고 패턴을 익히면 그제서야 횡설수설 혹은 빠른 랩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종합능력이 갖춰진다.

이 종합능력에는 미처 듣지 못한 단어까지 전체 맥락이나 상황, 상대방에 따라 채워 넣을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국회서 이 새끼들이 승인을 안해주면 (        )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이 괄호를 채우는 데는 그리 높은 수준의 종합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윤석열이 지금까지 보여준 언행, 당시의 상황 그리고 전체적인 맥락까지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청각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해석이나 이해가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설사 말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공간이 제공하는 정보와 언어는 판단에 충분한 도움을 준다.

여성의 신음소리를 들은 화장실이 지하철 공용화장실이냐 아니면 시끌벅적한 클럽 화장실이냐,  지하철이라도 뉴욕이냐 한국이냐에 따라 다른 판단을 했을 것이다.


문제의 발언을 했던 장소가 그 공간이 어디인지 안다면 그리고 일반적인 청각과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가졌다면 '날리면', '말리면'을 감히 주장할 수 없다.

대중이 자신의 종합능력을 부정하도록 선동해서 마침내 감각기관까지 의심하게 만드려는 가소로운 시도인 것이다.


정작 발언 당사자는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는데 국내 측근들이 당시 그 공간에 함께 있던 기자의 증언은 부정하고 국민들의 청각을 시험대에 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리고 대통령실은 '대통령 발언 싱크...'란 말을 썼다.

'싱크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sync든 sink든 발음이 똑같다. 최소한 '바이든'과 '날리면'만큼은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게다가 외국어이지 않은가)


싱크(sink)는 오물이나 폐기물을 담는 그릇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쓴 것이다.

'싱크(sink)'란 말은 60여년전 '존 B. 캘훈'(1917~1995)이 쥐 실험에서 나타난 쥐 행동의 붕괴를 묘사하기 위해 쓴 '행동의  싱크(behavioral sink)'가 연원이다.


이 복잡하고 오랜기간이 소요된 실험이 인간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최적의 환경, 즉 공간과 식량이 충족되더라도 인구 증가가 일어나면서 발생한 비정상적 행동(sink, 공격성, 사회적 고립, 본능과 모성애 상실, 생리적 이상)은 인구가 적정수준으로 유지되더라도 멈추지않고 결국엔 사회 조직을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동산 문제(공간의 편중 혹은 부족)가 가정을 꾸리지 않는 현상(짝짓기 회피)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을 시사하는 것만 같아 걱정스럽다.

이 과정에서  초기에 희생되는 집단은 당연히 사회적 약자(암컷, 새끼)다. 강자(힘센 숫컷)가 부를 독식하고(영토 독차지) 많은 혜택(다수의 암컷 지배)을 누리지만 싱크가 발생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멘트(sync)에 불과한지 비정상적 행태(sink)인지 각자의 판단이다.

우리 나라는 새정부 출범이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싱크홀(sinkhole)이 발생하고 있다. (sink의 원래 '가라앉다', '침몰시키다'는 의미다)

나는 대통령실이 sync가 아닌 sink를 썼길 바란다. '날리면'처럼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말장난이나 칠게 아니라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는 뜻이다


요컨대 집단 내 '싱크(sink)'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발생해서 집단 내에서 발견될 수 있는 모든 병리적 형태를 악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지금 한국은 국민 다수가 대통령을 위시한 소수의 권력 집단에 의해 생존의 위기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 창녀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