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Sep 21. 2022

창녀론

'샤크티 사무하'(Shakti Samuha)'라는 생소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인신매매 및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세계 최초의 비정부기구(NGO) 다.

설립자는 당시 19세에 불과했던 네팔 여성 '수니타 다누와르'다. 그녀는 1996년 미성년 성매매 문제로 안팎으로 거센 비난을 받던 인도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집창촌에서 빠져나온 매춘부 출신이다. 구출될 당시 그녀의 나이는 14세였다.

현재 세계적인 여성 인권운동가가 된 면전에서 그녀 출신을 문제 삼아 손가락질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내심 그녀의 전력이나 출신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창녀라고 지목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10년전 세인들에게 앙드레 김의 본명이 밝혀진 계기가 된 검찰총장 부인의 옷로비 사건이 있었다.

사건과는 별개로 과거 그녀가 다방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별의별 구설이 따랐다. '고졸 출신 다방레지' '다방녀' '오봉순이'라고 했다. 나는 왠지 불쾌감을 느꼈고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하찮게 보였다.

'근데 그게 왜? 어째서?'가 정확한 내 기분이었다. 그 다방은 내 고향에 있다. 그 다방을 잘 알고 다녀 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두 사람이 만난 시점에 남자는 군 복무중이었고 여자는 다방에서 근무했을 뿐이다.

사관학교 생도와 여공(역시 한국에서는 비하해서 공순이로 불렸다)의 사랑을 그린 영화 <사관과 신사 1982>에는 감동받으면서 다방에서 일한 전력을 들먹이는 건 표리부동으로 비춰졌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싶었다.


강원도 전방에서 군 복무를 했다. 시내에 다방이 두개 있었다. 서너살 연상인 다방 여종업원과 흉금을 터놓을만큼 친해졌다.

그녀의 과거사는 한국판 '수니타 다누와르'만큼 곡절이 많았다.

나는 그녀로부터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 인생을 진지하게 대하는 자세, 모성애의 위대함, 삶을 헤쳐나가는 용기와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면회 온 어머니에게 소개시켜 줬다. 꼭 소개해주고 싶었다. 당시 내게는 선생님 같은 두 여자였으니까.

제대 후에도 두 사람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지금도 그녀가 해줬던 이야기들은 모두 기억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젊은 날. 내 가치관을 세우는데 큰 도움을 줬다.


그보다 더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 정도로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사례로는 충분하다.

나는 단 한번도 그녀들의 과거사로 행실이 문란했을 것으로 단정짓지 않을 뿐더러 창녀나 다름없다며 내심 깔보거나 손가락질 해 본 적이 없다.

양심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창녀로 지목하고 역겨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성취하지 않은 신분이나 출신으로 낮은 자리의 사람을 하대하고 폄하하는 사람,

권력과 돈 앞에서는 비굴하면서 내심 알랑한 지식과 학력으로 키재기를 해서 우월감에 도취하려는 사람,

교양으로 포장한 교만으로 우아를 떨고 지성을 내세우면서 실은 외모를 과시하려는 사람,

입으로는 예술을 칭송하면서 화려한 드레스나 값비싼 턱시도쯤으로 걸치려는 사람,

자신의 저열한 욕망과 비루한 속물 근성은 숨기고 짐짓 지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위장하는 사람.

천박한데 교양을 부리고, 비루한데 우아를 떠는 사람이다.


나는 그들을 서슴치않고 창녀라 부른다.

차라리 성적 매력과 섹스로 인기와 돈, 권력을 차지하려는 사람은 차라리 자신에게만은 충실하고 솔직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드러난 창녀보다 숨어있는 진짜 창녀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멈추면 보이는 게 아니라 유심히 지켜봐야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사 새옹지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