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한편을 촬영한 기분이다. 그만큼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전세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보냈다.
저간의 웃지못할 사연이 겹쳐 전세 만료일 보름을 앞두고 초읽기에 몰렸는데 운이 좋았다.
동생은 맹장 수술받고 퇴원하자마자 부동산을 쫓아다녀야 했고, 나는 갈 곳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포장이사 계약부터 해뒀던 터였다. 여차하면 비어있는 고향집으로 귀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니의 서울살이가 10년째다. 선친 병구완하던 초기 2년은 내가 집 근처 오피스텔에 모셨고, 나머지 8년은 동생의 개인사로 인해 동생과 함께 살다 이후로는 근처 빌라에서 지내셨다.
그러니 2년은 일산, 강남에서 8년째다. 여지껏 우리 형제와 반경 1km이내에 사신 셈인데 이사갈 곳을 네비를 찍어보니 동생네와 6km 떨어진 아파트다.
전세값 상승은 뉴스로도 듣고 있었는데 전세 물량 자체가 희소했다. 있다해도 집값 하락과 맞물려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으면 불안했다.
가령 10억에 나온 매물인데 전세가는 6억, 근저당 3억7천인 식이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안건너는 동생이 내켜할 리 만무했다.
용케 청담동 중심, 전철 가까운 30평대 아파트 전세가로는 아주 싼 집을 구했다. 게다가 새로 개비한 지 얼마 안되어서 새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이 될려고 그랬는지 사는 분도 어머니처럼 혼자 사시는 한눈에도 깔끔한 성격의 할머니셨다.
근저당없는 20억을 호가하는 아파트가 족히 시가보다 1~2억은 싼 전세가로 나왔는데 집구경하고 아파트 동입구에서 결정해서 곧바로 계약을 한 것이다. 혹시라도 되물릴까봐 동생은 계약금도 요구한 금액의 2배를 송금했다고 했다.
이 아파트를 계약하기까지 불과 3시간동안 우리는 나락과 승천을 경험했다.
전화위복, 새옹지마의 짧은 현실판이었다.
원래 어렵사리 계약하기로 한 집은 이 집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동생과 그 집을 돌아본 뒤 동생은 집주인과 계약하러 부동산 사무실로, 나는 근처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헤어졌다.
약속시간도 여유가 있고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 걸어가던 중이었다. 걱정하던 집이 구해졌다는 안도감에 발걸음도 가뿐했다.
통화중인데 동생 전화가 걸려왔다. 업무적인 전화라 미루고 통화를 계속하는데 또 전화가 온다.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생 전화로 돌렸다.
"행님아. 우짜지. 계약 못했다."
"왜?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
"무슨 이런 일이 있냐"
"그러게. 나도 황당하다"
"일단 알았다. 형이 일보고 엄마집으로 갈게"
갑자기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운듯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두시간 남짓 복잡한 심정으로 일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다시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행님아. 다른 집 계약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갑작스럽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행님도 좋아할거야. 여러가지로 조건이 훨씬 좋다. 앞에 집 계약 안되길 천만다행이다"
"니가 알아서 잘했겠지. 만나서 얘기하자. 형도 막 가려던 참이니까"
동생은 큰 도로변에 차를 대고있다가 곧바로 나를 태워 계약한 집을 돌아보게 해줬다.
동생 말대로 환경이나 입지, 평수나 구조까지 더할나위 없었다. 살고 계시는 분도 친절했다.
"형이 집을 못봐서 다시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번거롭게 연거푸 찾아오게 됐네요. 잠시 둘러봐도 될까요?"
"그럼요. 다 둘러보세요. 꼼꼼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집을 나서려는데 혼자인데다 연세가 꽤 있으신 분이라 아무리 갈 곳이 정해져 있다해도 며칠 안남은 이사가 걱정스러웠다.
노인이나 아이를 보면 저절로 펼쳐지는 오지랖 병이다.
"그런데 급작스레 이사날짜가 정해져서.... 이삿짐 센터는 정하셨어요?"
"그러게요. 이제 알아봐야죠" "서두르셔야겠네요. 말일이라 예약이 꽉차서 어려우실 겁니다. 저도 여러군데 알아봤는데 운좋게 예약취소가 된 게 있어서 겨우 잡았습니다. 좀 싸다싶어도 작은데는 하지마세요. 짐이 망가지거나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곧잘 있다고 하니까요"
"아. 그렇겠네요. 그렇잖아도 저번 이사올 때 했던 업체 연락처를 잊어버려서 다시 알아봐야 하나 걱정이 되던 중이긴 한데..."
"그럼 제가 구한 업체가 규모도 크고 담당자가 친절하던데 제가 알아봐드릴까요?"
"아휴 그래주시면 좋죠. 고맙죠"
업체 담당자와 통화해서 다음날로 방문약속까지 잡아 연락처를 알려드렸다.
"어련히 니가 알아서 했겠냐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번 더 꼼꼼히 챙겨봐라. 조건이 너무 좋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을테니까"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며 동생에게 당부했다.
"부동산에서 등기부등본도 다 보고 입금자가 주인인지 다 알아봤다. 여기 이거...." 동생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등기부등본과 통장사본을 보여줬다.
"등본 날짜도 오늘이고 크게 이상은 없어보이네. 그럼 계약금이라도 더 걸지 그랬냐"
"안그래도 부동산이 말한 계약금에 2배 보냈다. 물릴까봐. 우리 뒤에도 이 집 보러 올 사람들이 꽤 있었나 봐"
"잘했다. 그래도 한번 더 알아보고...."
"알았어"
3시간동안 벌어진 사건의 전모다. 어젯밤은 오랜만에 프로포폴맞은 것처럼 스스륵 잠이 들었다.
오늘 오전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덜컥 무슨 전화인가. 자라보고 놀랬던 가슴이라 냉큼 받았다.
"행님아. 전화 괜찮나? 어째서 그 아파트가 싸게 나왔는지 이제 다 알게 돼서 알려줄라고.... 있잖아. 그게.... ㅎㅎ 운 좋았다" 이전 집보다 억단위를 더 채워야해서 부담이 될텐데도 동생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맞습니다. 어제 소개해드렸던, 저희가 이사갈 집, 그 분과도 계약이 되셨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어제 이삿짐 업체 담당자는 이미 그 날 예약은 꽉 찬 상태고 1팀 인원이 남았을 뿐인데 혹시 짐이 많으면 자신들이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양해를 구했었다. 다행히 살고계신 그 분과 계약이 됐단다. 두루 잘된 일이다.
며칠 전 기제사 때 엄마는 절을 하고도 여느 때와 달리 한참동안 눈을 감고 뭔가를 기원하셨다. 내용이 궁금해졌다. 한번 여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