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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Oct 06. 2022

만원 여행 6

당신은 매화입니까?

유배지로서 남도의 역사는 깊고 풍부합니다.

오래전부터 전남과 인근 섬은 중앙과 멀리 떨어져있어 유배지로 자주 선택되곤 했습니다. 제주도를 빼면 가장 많은 인물들이 유배당한 곳입니다.


역사란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폭포가 아니라 굽이치는 도도한 강물 같아서 모래톱을 만들고 비옥한 땅을 일구기도 합니다. 그 풍부한 유산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고장이 또한 남도입니다.

서슬퍼런 왕권과 피비린내 나는 정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풍광과 때묻지 않은 인심에 녹아든 역사적 인물들의 학문과 예술의 향취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제가 남도를 사랑하고 자주 찾는 이유입니다.


나주는 정도전을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보길도에 가면 윤선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씁니다. 정약전의 동생 정약용이 18년간 유배 생활을 한 곳이 강진입니다.

이들과 남도의 인연은 운명이었나 봅니다. 본관이 나주 정씨인데다 그들의 어머니는 해남 윤씨, 윤선도의 직계 후손입니다.

이렇게 나주와 보길도 그리고 윤선도는 정씨 형제와 한 줄기로 엮입니다.


다산(茶山)이란 호가 말해주듯 정약용은 차(茶)를 사랑한 인물입니다.

어디서건 커피향을 맡을 수 있는 지금으로 치자면 뛰어난 바리스타였을 것 같습니다.


강진에는 유독 달(月)이 들어가는 지명이 많습니다.

월출산, 월산, 월남사가 그렇습니다. 서양의 홍차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떠올리게 하는데 우리의 차는 교교한 달빛에 새색시처럼 고개를 드는 새순이 떠오릅니다.

달이 머문다는 월출산 자락에는 천년넘게 자생하는 차나무들이 있습니다. 정약용은 고려시대 융성했다 사그라들던 차문화를 강진에서 다시 부흥시킵니다.

제자들이 그의 차사랑을 이어가며 유배가 끝난 이후로도 해마다 스승에게 차를 보냈습니다.

100년 넘게 지켜진 이 약속을, 그 명맥을 이어오는 차 브랜드가 '백운옥판차' '금릉월산차' '월산차'입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차가 일본 차로 둔갑하는 걸 개탄한 이한영(1868~1956) 선생이 상품화한 것입니다.


굳이 오래된 차 (茶)브랜드를 하나하나 언급한 이유는 집안 대대로 간직했던 이 이름들을 쓸 수 없을 뻔 했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강진에는 묵은 야생 차나무들이 많지만 지금은 넓게 펼쳐진 차밭이 먼저 눈에 띄입니다. 10만평에 이른다는 이 차밭의 주인은 대기업입니다. 이 대기업이 '백운옥판차' '금릉월산차' '월산차' 상표등록을 먼저 해버립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손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마침내 그 이름을 되찾게 됩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지만 그 과정에서 겪었던 고충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사인의 재산권 분쟁인데 왜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이한영차문화원을 운영하는 이현정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차를 전공해서 박사가 됩니다. 농업법인을 세우고 다산으로부터 이어져 온 조상의 제다법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이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이 차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될까 고민하면서 내가 그냥 '강진에서 이런 집에서 태어나서 차 잘 만드는 아줌마가 되어야 할까?'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리나라에는 대단한 차 단체들이 있는 거예요..... 그들이 다 저에게 "상표를 가지고 우리에게 와라 우리는 전국에 지부가 있다. 그러니 그 차 다 팔아줄 수 있고 잘 살게 도와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셔서 생각을 해봤는데 그들이 지금은 대단하지만 그 역사는 길어야 40년, 50년인데 이 차의 역사는 200년이 넘었잖아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면 나중에 저의 후손들이 "그 할머니가 그때 자기 좀 잘 살아보려고 그렇게 했대"라고 할 것 같아서 나는 이 역사의 선상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만 해놓으면 그 다음에 또 누군가는 이어서 더 파이를 키울 것이고 그렇게 파이를 키워서 우리나라에서 이 차의 종가로서의 역할을 몇십년, 100년 지나서 하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가기로 했습니다. 혼자 이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저들이 툭 밀어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를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차로 석박사를 했습니다. 2018년 귀향해서 다음해에 농업회사 법인을 세워서 지금까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현정의 말 中에서 2022. 10. 2>


백운옥판차 상표인 뒷면에는 매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느 문양과는 사뭇 다릅니다. 한반도를 표현한 겁니다.

양 옆에 쓰여진 화제(畵題)를 유심히 읽어봐야 합니다. 이 당시가 일제강점기였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겠습니다.

'백운일지 강남춘신 ( 白雲一枝 江南春信)' '백운동 나뭇가지 하나에 날아드는 강남 봄소식'입니다.


매화는 눈 속에서 꽃을 피워 봄을 맞이합니다. 예로부터 끈질긴 생명력과 곧은 지조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모진 풍파를 견디느라 줄기는 거칠고 굴곡져 있습니다. 고단한 삶에도 마침내 꽃을 피우려는 사람을 닮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매화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지금 우리나라는 그리고 우리가 꼭 매화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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