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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Oct 06. 2022

광란의 질주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랄까.

어디선가 들은 섬뜩한 우스개 소리가 있다. 손님이 바이크를 사가면 매장 직원들이 "관(棺) 하나 들어간다'고 수군댄단다.

젊은 시절 빠져들뻔 했던 바이크는 이제 그 중력을 이기지 못할 것 같고 운전이나 할 수 있을지 가물가물하다.


그 앞에서 고개를 쳐들어야만 했던 암벽은 한껏 콧대 세운 미인을 대하듯 도전과 용기가 불끈 샘솟게 했다. 이제는 손아귀 힘도 없는데다 암벽 있는 곳까지 오르기에도 숨이 차니 멀찌감치서 바라만 볼 뿐이다.

연애시절 아내의 만류가 아니었더라도 바이크와 암벽등반은 내 것이 안된 게 차라리 나았을런지 모른다.


마흔에 시작한 골프는 타의에 의해서, 필요해서 배우게 됐다.

배운 지 3년이 안돼 싱글 스코어를 내고 (물론 그 과정에서 갈비뼈가 두번 정도 나가긴 했지만...) 홀인원까지 해치우는 바람에 처음으로 로또같은 보험금을 타기도 했다.


대개 내가 터득한 잡기나 취미는 당구로 치차면 200점 정도에서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한다.

같이 하는 운동이면 남이 불러 줄 정도, 좀더 단련하면 고수반열에 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기 직전, 혼자 하는 것이면 그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부족하지 않으면 된다.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내게 주어진 여분의 시간, 내 경제적 분수에 골프가 타당한지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골프로 맺어진 인간관계, 일상의 갑갑한 바닷속을 헤엄치다 수면에서 내뿜는 고래의 숨같은 짜릿한 쾌감에서 헤어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실력이 급상승하다보니 도전을 받는 입장이어서 공짜거나 캐디피 정도로 골프를 즐길 수 있었던 유혹은 강렬했다.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전동휠을 배운 게.


우리집에는 전동휠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국내 최대 크기. 최대 속력을 낼 수 있다. 오죽하면 별칭이 '몬스터'일까

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그 물건을 만났다.  나름 익스트림 스포츠로 바이크의 속도감과 암벽등반의 스릴을 다소나마 달랠 수 있었다. 무모하게도 광주에서 담양까지 국도를 달렸고, 섬여행을 다닐 때마다 그 곳에서 교통수단을 대체했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5~6년전. 우리 회사도 아닌 지인 회사 MT에 초대받아 무의도를 갔다.

밤이 이슥하도록 술을 마신 다음날 새벽. 예의 전동휠을 타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삑 삑 경고음을 들은 것도, 못들은 것도 같은데 내 몸은 이미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지난 밤의 자욱한 숙취와 무중력 상태의 아득함이 뒤섞여 잠깐 몽롱한가 싶더니 이내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쳐졌다.


족히 5~6미터는 날랐던 것 같다. 그 세계에서 말하는 '슈퍼맨'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찰나에도 얼굴을 안찧으려고 몸을 돌렸던 것인지 오른쪽 어깨가 먼저 땅에 닿았다. 셔츠 소매는 다 헤졌지만 꿰매야 할 정도의 깊은 상처는 없었다.

어깨가 욱씬거리고 아스팔트에 쓸린 상처에서 계속 피가 배어 나오긴 했지만 그 정도라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도 어깨가 낫질 않았다.

팔을 어깨 높이 위로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심결에 오른팔을 뻗다가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다. 정형외과도 찾고 한의원도 다녔다. 벌침이 용하다고 해서 몇 개월동안 맞았는데 맞은 날 하루동안만 통증이 덜했다.


당연히 골프는 내게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잖아도 울고 싶었는데 뺨을 때려 준 셈이다.

이후 6년이 흘렀지만 골프채를 잡지 않는다. 꾸준하게 통증을 참으며 팔을 가만두지 않은 탓인지 지금은 어깨 위로 뻗을 수 있게 됐다. 일부러 통증이 느껴지는 특정동작을 되풀이하는데 좀체 완전히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고 당시를 떠올려 본다.

전동휠은 최대속도에 이르는 동안 경고음을 보낸다. 최초에는 "삐~~~삐~~~" 긴 간격으로 울리다 점차 간격이 빨라져 다급하게 "삑삑삑"울리는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그럴 지경이면 자동으로 속도가 줄어들게 만들어졌어야 하는데 최대속도에 도달하면 일순간 동력이 끊긴다는데 있다.

최대 속도로 달리던 자동차의 시동이 꺼지는 것과 같다. 손 쓸 방법이 없다. 그대로, 온몸으로 충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우리나라 전역에서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

멀리 외국에서부터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고장난 것 같았던 국내 언론도 이따금 경고음을 날린다.

사고는 찰나에 일어나지만 고통은 오래도록 남는다.

지금이라도 이 광란의 질주를 멈추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달려가게 내버려 둘 것이다. 속도를 줄이는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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