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Oct 06. 2022

거미의 자유

"글 참 잘 쓰세요" "잘 쓰는게 아니라 그냥 쓰는 겁니다. 쓰는 걸 좋아하니까 많이 쓰고 싶긴 하죠"

그나마 무관한 사이라서 그렇지 실은 굴이라도 파서 숨고 싶다.


얼마전 사무실 이사를 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짐을 줄이느라 꽤 많은 분량의 책을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장르나 주제별로 묶어야 했다.

단일 주제로는 '글쓰기'책이 가장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정작 놀라운 건 그 중에 단 두 권만 완독했다는 사실이다. 그마저도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었다.


독서인구는 줄어든다는데 출간 소식은 끊이질 않는다.

전업작가와 일반인 작가의 경계도 뭉개지는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 글을 쓰려는 사람은 늘어나고, 책을 내겠다는 열망은 쉬이 식지않는다.

다행스러운 일이긴 한데 그래선지 무슨 초등 참고서처럼 '글쓰기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글쓰기 교실' '글쓰기 강연'이 성황이다.


나 역시 글을 '잘'쓰고 싶어서 '글쓰기' 책을 사 모은 게 분명했다.

시점을 보니 첫 책 <거북이가 된 고슴도치>를 출간한 직후다. 기회가 찾아와서 멋모르고 냈다. 멋모를 때 결혼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멋모르고 부모가 된 것이다.

자식이 태어나고 그제서야 좋은 아빠가 될 준비가 안돼 있는 걸 깨달았다. 허겁지겁 육아책을 뒤적거리듯 글쓰기 책을 찾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 '글쓰기 책' 순례는 실패로 끝났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먼저 괜찮은 사람이 돼야 한다. 좋은 책도 마찬가지다.


내 글은 근본이 없다. 배운 바도 없을 뿐더러 인문학적 토대나 전문 지식도 부족하고 사유도 깊지 못하다.

"책을 읽어서 글을 쓰게 되는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서량도 부족한데 무작정 써대다보니 내 글은 밤에 썼다 아침에 읽는 연애편지처럼 낯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도 쓴다. 쓰고 싶어서 쓰고, 쓰는 걸 일이라 여기면서 쓰려고 한다.

내게 있어 글쓰기는 깊은 바다에서 솟구치며 내쉬는 고래의 날숨같은 것이다.


글 쓰는데 나름의 지침이 있기는 하다.

물론 '글쓰기 책'에서 읽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런 참고서를 쓰지 않았다. 그저 몸소 보여 주고 앞서 갈 뿐이다. 공부는 내가 해야 한다.

"글은 '수다를 떨지 않는 문장'이어야 한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담백한 문장, 누구나 알기 쉽게 썼는데 그 안에 많은 뜻, 깊은 의미가 함축된 문장이다. / 김훈"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은 시대를 살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글은 당대의 사회현상을 보여줘야 한다. 생활에 밀착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장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머리나 손이 아닌 몸으로 밀어 써야 하는 것이다. 몸으로 문대서 쓴 글에 거짓과 과장이 있을리 만무하다.


좋은 글은 남보다 나를 먼저 의식해야 한다. 남에게 읽히기 보다는 스스로 암송하고 싶은 글을 쓰려고 한다.

장미는 가시로 아름답고, 꿀벌은 침을 가졌다. 향긋하고 달콤한 문장에는 가시가 있고 잘 벼린 칼의 서늘함을 간직하고 있다.

데낄라는 거친 사막을 품고 있어 매혹적이다. 오래 잘 숙성된 데낄라는 레몬즙과 소금이 필요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기분좋게 취하는 문장을 쓰되 달팽이가 지나간 흔적이어야 한다. 적어도 사고 현장의 스키드 마크는 아니어야 한다.


좌절과 탄식을 자아내는 좋은 문장은 책을 읽을 명분을 준다. 질투와 시샘이 강장제 역할 을 한다. 자연스럽게 책 읽기와 글쓰기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밥벌이가 아닌 쓰고 싶어 쓰는 내게 페북은 고마운 도구다.

책이 액자에 담긴 캔버스 작품이라면 페북은 스케치북과 같다. 긁적이다 찢어버리기도 하고, 뎃생을 하든 물감을 칠하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는다. 익은 생각을 거르고 거른 언어로 꾹꾹 눌러 쓰려고 노력한다. 능력이 못미친다고 자존감마저 내려놓은 것은 아니니까.


최근에 화인(火印)처럼 찍힌 문장이 있다. "거미의 자유"다.

거미는 몸으로 실을 잣는다. 그 피와 살로 얽은 공간 안에서 거미는 온전히 자유롭다.  

나는 글을 뽑아 성근 그물을 엮는다. 이슬은 붙들고 바람은 흘려보낼 수 있도록.

내게는 아름다운 사람과 문장을 걷어 올리고, 세상 바람에 조응하는 공간이 페북이다.


"사업과 사업 외적 삶에서 성공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워런 버핏이 대답했다.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것'

내가 글을 쓰고, 페북에서 이루려는 건 거미의 자유와 워런 버핏의 성공이다.


작가의 이전글 광란의 질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