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Oct 08. 2022

저 마약합니다

딸아이는 서양학과다. 애써 지 맘대로 하게 해줬는데 내 방에 걸 그림 한 장을 안그려준다.

사진 찍고 컴퓨터 만지고 하다못해 내 손바닥 눌러서 석고 뜨고는 모델료도 안준다. (물론 내 손바닥만 쓰인 건 아니지만)

그래서 밑지는 장사 한 것은 아닌지 못내 불만이다.


어느날 딸아이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너는 어째 서양학과라면서 아빠한테 그림 한 장 안그려주냐?" "아빠. 현대회화는....."

괜히 말 꺼냈다. 금새 후회했다. 거의 삼십분 넘게 현대미술 강의를 들었다.

슬그머니 돈 안되는 일에 투자한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는데 그 말까지 꺼냈다간 본전도 못건질 것 같아 참았다.


글쓰기도 돈 안되는 쓸데없는 짓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구나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글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 참으로 지난하고 희박한 확률에 도전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책을 읽어서 글을 쓴다. 남의 글에 눈시울 붉어지고 가슴이 요동치고 따뜻해 진다. 언젠가 자신도 좋은 글을 쓰리라 다짐하며 읽고 또 읽는다.

언뜻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일에 기꺼이 매달리길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희안한 일이다.


미술도 문학도 잘은 모르지만 음악도 자신의 영혼을 비껴내어 담는 작업인 것 같다.

인간을 이토록 몰아지경에 빠트리는 것이 또 있을까.


양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싼 것 아닌가 의심하는 식재료 두가지가 있다.

트러플과 캐비어다. 비싼 것은 금값 이상이라고 했다. 트러플은 땅 속에 묻혀 자란다는 버섯이고 캐비어는 철갑상어 알이다.

슬라이서로 얇게 깎아내는 트러플이 떨어질 때 우리 삶 위에 비늘처럼 내려앉는 글을 보는 듯하고. 작은 유리종지에 담긴 캐비어에서 별처럼 빛나는 작가들의 사리같은 문장들을 떠올린다.

트러플은 인간의 영혼이고, 캐비어는 영원히 구전될 주옥같은 문장같기도 하다.


글쓰기를 좋아한다. 잘쓰려고는 하지 않는다. 잘 쓰고 싶긴 한데 그러다보면 첫 줄부터 나가지가 않는다. 그래서 시간만 허락되면 마구 쓰고 많이 쓰려 한다.

이럴 때 낯뚜꺼운 건 무척 도움이 된다. SNS는 유용한 도구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전되는 시대에 내 시간 들이고, 전기통신비 내면서 쓰니 거칠게 없다.


본문은 거짓과 과장없이 솔직하고 진중하게 쓰려 하고, 댓글은 가볍고 위트있게 남기는 편이다.

가끔 본문 깊숙히 숨겨진 나만의 암호나  들키고 싶지 않은 진의를 찾아내는 페친들이 있다. 흠칫 놀라면서도 반갑고 고맙다. 내게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아무래도 글쓰기는 건강을 해치지 않는 허용된 마약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많은 사람이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 설명할 길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저도 애인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