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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Oct 09. 2022

섬에 갇힌 사람들

생소하고 흔히 쓰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우리말이 있다.

'섬어(譫語)'도 그 중 하나다. 처음 이 말을 알려 준 사람은 한의사였다. 공황장애나 우울증 치료에 진력하던 분이셨는데 덕분에 정신질환에 이르는 현대인의 그늘을 이해하는 계기도 됐다.


섬어의 사전적 의미는 "1. 앓는 사람이 정신을 잃고 중얼거리는 말. 2.잠을 자면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헛소리 [naver]"라고 나와있다.

나는 그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의식이 맑지 못하여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마구 지껄이는 것"이란 설명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섬어의 섬은 한자로 '헛소리 섬(譫)'이다.

그런데 굳이 한자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다.

자신만의 섬에 갇혀 중얼거리는 말이 '섬어'다.


국민 뇌리에 진도라는 섬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8년째다.

사건 발생한 지 7시간 후 나타난 당시 대통령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라고 했다.

이 말이 "섬어"다.

자다가 왔으면 덜 깬 잠꼬대고, 그렇지 않았다면 의식이 맑지 못해서 한 터무니 없는 말이다.

그녀가 말한 '우주의 기운'은 장막 뒤 무당에게서 뻗어나왔고, '혼이 비정상'이었던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국민은 그를 탄핵해서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지 아니면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한 탓인지 우리는 또다른 섬어의 달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은 없었다" "나라가 없으면 국민이 있겠습니까"

이런 헛소리를 하고도 대통령이 된 탓에 자신감이 붙어서일까?

취임한 이후에는 "메모리얼 파크는 멋있는데..." "원전, 안전 중시 버려라"며 호통을 치더니

마침내 전직 대통령처럼 세 가족이 죽은 반지하방 창문을 앞에서 "왜 미리 대피가 안됐냐?"는 섬어를 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섬어가 전직 대통령과 다른 점은 '거짓말'을 섞어 쓴다는 데 있다.

무식한데 용감하고 거짓말을 하고도 당당하다.

자신이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하다며 치켜세운 당대표를 비난하고, 10원짜리 하나 피해준 적 없다는 장모는 구속됐다.  

게다가 비속어를 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와바리' '이 새끼, 저 새끼'가 예사다.


그랬던 그가 마침내 세계적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외교무대에서 예의 제 버릇을 못버리고 사고를 친 것이다.

"이 새끼들이 승인을 안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자신은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이 아니라서 자유를 잘 안다고 자부해서인지 UN에서는 21번이나 '자유'를 외친다.

수습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새끼... 쪽팔려"란 말을 한 기억이 없다며 국민의 청력을 시험에 들게 한다. 그토록 자유를 강조하면서 언론과 예술의 자유를 뭉개는데는 총력을 기울인다.


같은 '헛소리 섬(譫)'을 쓰는 단어 중에 '섬망(譫妄)'이 있다.

착각과 망상을 일으키고 기억상실이 발생하는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이 역시 헛소리를 동반하는데 '망녕 망(妄)'자를 붙이는 이유다. 자신만의 섬에 갇힌 채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백지를 읽을 줄 안다고 착각하고, 모니터의 빈 화면으로 업무를 본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이 뱉은 비속어의 진상을 오히려 들은 사람의 목을 졸라 규명하려드니 분명 '섬망'이다.

우리는 급기야 거짓말과 섬어를 구사하는 섬망을 앓는 대통령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섬어를 쓰던 대통령도 끌어내린 국민이다.

과연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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