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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감싸던 종이들 6>

Vinyl Sleeve Stories

by JDC side A

6. 악기가 말하는 음반 - Big Top Records


기타와 트럼펫, 색소폰과 드럼.

소리를 시각화한 종이 위의 오케스트라.


_MG_2379.jpg Big Top Records U.S.A. Instruments Reversed Both Sides Company Sleeve 1960 – 1964



슬리브를 펼치면, 하늘색 바탕 위로 기타, 색소폰, 드럼, 트럼펫, 더블 베이스의 윤곽이 얇은 선으로 그려져 있다.
중앙의 원형 구멍 주변을 감싸며, 이 악기들은 마치 음표가 잠시 쉬는 자리처럼 배치되어 있다.

Big Top Records는 팝과 기악 음악 사이를 넘나드는 레이블이었다. 연주곡과 노래 모두를 포용하려는 레이블의 아이덴티티가이 슬리브 위 악기 일러스트로 형상화된 거다.

Big Top Records는 1958년 뉴욕에서 출발했다. Hill & Range 음악 출판사와 손을 잡고, 브릴 빌딩(Tin Pan Alley)의 작곡가·출판자들과 밀접히 연결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이블은 상업적 감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팝의 흐름 안에서 다양한 음악 색을 실험했다.슬리브 위 악기들은 그 실험 정신의 상징이다.


보컬만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 연주자의 색깔과 소리의 결을 드러내고픈 시대였다. 그래서 기타와 색소폰이 나란히 그려지고, 트럼펫과 드럼이 공간을 채운다. “우리는 악기와 노래, 둘 다 듣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Big Top의 대표 싱글 중 하나, Del Shannon의 “Runaway” (1961) 은 이 레이블의 전성기를 알린 곡이다.
노래의 리듬엔 기타와 키보드, 약한 백 보컬이 섞여 있고, 배경엔 연주자들의 호흡이 느껴진다.
슬리브 위 악기들은 그 숨결을 미리 예고한다. 또 Johnny & the Hurricanes 같은 연주 중심 그룹의 곡들도 Big Top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이런 조합이야말로, 팝과 연주곡의 경계를 허무는 시대의 한 조각이다.


슬리브는 단순한 보호막이 아니다. 그 안에 음악의 정체성과 레이블의 감각이 녹아 있다. Big Top이 악기들을 그림으로 내보인 건, 소리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시각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주자의 숨소리가, “이건 우리 음악이다”라는 레이블의 자부심이, 그리고 그 시대 팝 음악이 품은 실험 정신이 담겨 있다. 종이 위 악기들이 말하는 것들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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