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어쩌다 부동산 투자'談 2
집에 대한 고민은 갑작스런 남편의 발령으로 후순위로 밀렸다.
1년 간의 중국 주재원(파견) 근무라고 했다.
위치는 중국 칭다오(청도) 옆 황다오(황도).
황도라는 이름보다는 황도개발구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도시였다.
어떻게 보면 내가 신혼생활을 하던 서울 바로 옆 베드타운의 느낌이랄까.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다를 끼고 있는 해변도시,
실제 거주 느낌은 우리의 부산과 비슷한 환경이라는 점이었다.
개발구답게 공사가 중점적으로 이뤄지던 바닷가 쪽은 큰 건물과 대형마트,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면세 아웃렛 등이 화려하게 지어지고 있었다.
대륙 쪽으로 갈수록 작은 상점과 전통시장, 오래된 식당이 이어지는 동네였다.
한국에서 파견되는 직원들 가운데서 남편은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대부분 부장, 임원급들이 즐비했는데, 덕분인지 같은 신축 아파트에 거주지가 마련됐다.
남편은 이 점에서 상당히 안도하는 듯 보였다.
“전기, 난방비도 회사에서 지원되고 신축에 단지 규모도 큰 아파트니까
단열이나 난방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미리 둘러보고 왔어.”
출장 간 김에 우리가 1년은 살아야 할 단지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왔다고 했다.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도 빌트인 되어 있어서 정말 몸만 가면 되었다.
아이가 막 7개월에 접어든, 우리 집에서 추위의 쓴맛을 본
그해 1월에 중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나날의 시작이었다.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의 육아가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10가지는 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단연 첫째는 '집'이었다.
실제 황다오 집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25층~30층 고층 신축 아파트 단지 내에는 비너스 분수나 정원 같은 공원,
지면에 탄성이 있는 긴 산책로도 있었다.
우리 동 바로 옆 센터동에는 편의점처럼 깔끔하게 진열된 24시간 식료품점도 있었다.
우리 집은 22층 전망 좋은 38평형에 방이 3개나 되는
신혼집에 비할 수 없는, 내게는 과분한 집이었다.
특이하게 주방은 별도 공간화되어 넓고 환기가 잘 되는 시스템이었다.
주방과 세탁실이 나란히 붙어있었는데 세탁실에서는 바로 근처 바닷가가 제일 잘 보였다.
주방에서 밤늦게까지 이유식을 만들다가도 세탁실로 넘어가 창밖을 내다보며,
독박육아의 시름을 잊곤 했다.
한국에선 돌도 안된 아기와 중국에서 어떻게 지냈냐고
종종 안부를 묻는 지인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진짜 우리 집보다 좋아요”라고 답하곤 했다.
정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지인들은
"너무 괜찮은 척 좀 하지 마, 너는 좀 너무 참는 경향이 있어"
-_-
중국에선 심심할 틈이 없었다.
평일이면 같은 단지 내, 같은 처지인 주재원 나온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기가 가장 어린 편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 아이까지 골고루 있었는데, 다들 가족처럼 지냈다.
경험해 본 이들은 공감하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여자 동무들과는 1~2주 한 번씩 칭다오에 있는 ‘찌모루’ 시장에 나들이 갔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때 한창 유행하던 일명 ‘짝퉁 시장’이다.
유명 브랜드, 명품 제품들을 카피한 물건들이 즐비했다.
사장님과 친해지면, A급, 특급이라 불리는 명품 전문가도 분별하기 어렵다는 카피제품을 보여줬다.
특급 제품을 보려면, 상점 내 비밀의 문을 2개나 통과해야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2~3년 이상 지낸 여성 이웃들과 함께 가면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다들 타국에서의 작은 즐거움 정도의 소소한 소비들을 하고 나오곤 했다.
가격을 흥정하는 재미랄까?
가격은 깎아달라고 하면 할수록
끝도없이 내려갔고,
어설피 배운 중국어를 써먹는 몇 안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 절반의 절반 가격을 깎고 또 깎아서 600엔에 구매한 버버리 머플러를 잘 쓰고 있다.
100엔 주고 산 샤넬 지갑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소소한 재미는 중국 전통시장이 단연 최고다.
우리나라에선 너무 비싸서 살 엄두도 못 내던 전복, 대형 새우 등
수산물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유식으로 전복죽을 자주 만들었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은 마치 나를 좋은 엄마로 느끼게 해 줬다.
적은 금액으로 아이에게 따뜻한 공간과 먹을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린 엄마에게 큰 기쁨이 되어 주었다.
자주 길고 긴 출장을 떠나는 남편의 빈자리도 잊게 할 만큼
좋은 환경은 독박육아 시름도 잊게 했다.
중국 황다오에선, 돈을 쓰고 싶어도 쓸 데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쓸 줄 몰랐던것이었을수도...)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 동네 한인 여성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다.
"여기선 어디 돈을 쓸데가 없어요, 화장품이며 옷이며, 우리나라 제품만 한 게 없어서....
음식도 훠궈, 마라탕 말고는 먹고 싶은 게 많지도 않고..."
"나는 그냥 남은 돈, 한국 한 번 나갈 때 피부과 가서 쓰려고요.
여기 햇볕이 강해 기미도 많이 생기고. 미용실이며 피부과, 성형외과는 한국이 최고잖아요.
여기선 여름 되면 어차피 기미 또 생길 텐데, 지금은 안 할래"
가끔 명품이 갖고 싶을 땐, '찌모루'에 가면 되었다 -_-
그래서 황다오 여자들이 모여서 가장 크게 부리는 사치라는 건
그 동네 대형마트 안에 있던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일이었다.
외국인들도 많이 사는 도시였기 때문에
스타벅스에 가면 조용히 커피 마시는 외국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커피값은 한국과 비슷했다.
한국에선 스타벅스 커피는 비싼 축이었는데,
이곳에선 여기가 아니면 딱히 돈 쓸데가 없었다.
한 번씩 소비를 통한 도파민 분출이 필요했다.
그러면 아기와 스타벅스에 가서
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주말엔 대학생 선생님으로부터 중국어를 배웠다.
아기는 남편에게 잠시 맡기고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공부를 했다.
공부가 이렇게 재밌었나?
아파트 옆 카페에선 '어반자카파'의 감성적인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다.
22살의 소녀같은 선생님은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중국 문화, 역사를
나는 한국 유행, 음악, 문화 이야기를 나눴다.
10살 차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타국에서의 생활이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외에도 더 있다.
소소하지만 호기심 많은 나를 늘 자극해 준 새로운 중국 문화,
노래, 그림, 음식....
그중에서도 날 가장 만족스럽게 한 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상의 무관심'이었다.
요건 중국이 아닌 어느 해외에 가도 느낀다는데,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는 외국인들은
내가 생얼에 러닝셔츠 바람이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지역은 여름이면 더운 바닷바람이 부는 지역이라
나이 든 남성들 가운데는 자연스럽게 웃통을 까고 다녔다.
아무렇지 않았다.
누구도 우리 모녀를 두 눈 치켜뜨고 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육아 잔소리는 들을 일이 없었다.
어느 날은 우리 돈 3만 원 정도를 주고
스트레이트 펌을 해봤다.
그 동네 엄마들은 대부분 차이나타운 같은 곳의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갔지만, 나는 한 번쯤 중국인 미용실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1/4 가격 펌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스트레이트'한 강력한 펌은
2~3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진정한 열펌이었다.
중간중간 살짝 타들어간 머리카락 뭉텅이가 있었지만,
그 가격에 그 효과면 감내할만했다.
남은 돈은 한국에서 쓸 터였다.
한국에 가면 사고 싶은 게 많았다.
그전까지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육아하며,
타국에서의 삶을 즐기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1년은 빠르게 흘렀다.
그 사이 아이는 돌도 지나고, 떼가 느는 18개월도 무난히 보냈다.
어느덧 20개월이 되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처럼 아쉬운 적이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남편회사에선 좀 더 있어주길 바랐지만,
남편은 완고하게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좋은 환경에서 만족하던 나와는 달리
장기 출장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등으로
남편은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춥디 추운 겨울에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