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포비아를 이긴 '추위'

- 나의 '어쩌다 부동산 투자'談 2

by 아로하

남편은 처음부터 대출받는 것에 반대했다. 필요한 금액은 7천만 원.

35살의 이 남자가 엄청난 ‘쫄보’라는 걸

알고 지낸 지 10년 만에 체감하게 된 것이다.


<사진설명> 한때 즐겨 모았던... 2014년


논리는 이러했다.

“내 월급으로 7천만 원을 갚으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몰라.”

“십년 넘게 못 갚을 수도 있다고!”


역시 사람은 돈을 모아본 경험을 해보아야 대출을 내는 것에도 용기를 낼 수 있다.

나는 결혼할 때 3년만에 4천만 원을 모아서 모든 걸 해결했었다.

그냥 안 쓰고 예적금 통장에 일정하게 저금했고 가끔 펀드로 수익을 보기도 했다.

갚지 못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갚지 못할 금액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추운 집에서 평생 살 수 있어?”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며칠 뒤 동네 부동산을 찾았다.


신혼집 매매 2년이 지났고, 당시 2년 보유, 실거주 상태였으므로

양도세 면제 대상이었다.

어릴 때부터 주워들은 풍월이 있어 이 정도는 상식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30대 초반 당시 내 주위 친구들은 대부분

아파트 매매 계약이나 세금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지만,

막상 눈앞에서 내가 해결해야 할 내 일이 되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부동산 사장님은 우리 동 바로 옆 상가(늘 들락날락할 수 있는 위치)의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여자 사장님으로 정했다.

나는 내가 거래하고자 하는 사람을 볼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1. 시간을 정해두고, 루틴하게 문을 여는 곳.

2. 가능하면 휴일 없이 일하는 곳.

(쉬는 날이면 명확하게 표시해 놓는 곳)

3. 연락을 취했을 때 바로바로 피드백이 오는 사람.

4. 구매자가 나이가 어리고, 돈이 적어 보여도 존중하는 어투로 대화하는 사람(예의)

5.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


나는 그때 막 33살의 많지 않은 아니였지만,

그때 만난 사장님은 그런 분으로 보였다.

당시 부동산 하락기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여사장님은 늘 여유롭게 맞아주셨다.


<사진 설명> 당시 아파트 단지 쪽문


집이 난방이 안 돼서 아기가 꽤나 고생했다는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해결책을 안내해 주셨다.


“이 단지는 따뜻한 동이 정해져 있어요. 외지인들은 모르지.

하지만 여기 조금 살았다는 사람들은 다 알아. 어느 동이 춥고, 어느 동이 따뜻한지.”

사장님은 내가 살만한 매물 몇 개의 동호수를 가격별로 보여주셨다.

나중엔 아예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매물 전체 엑셀 파일을 꺼내셨다.

어떤 게 싸고 어떤 게 비싼 건지 알려주셨다.


“이 동은 저층인데 같은 동 고층하고 가격이 같잖아요.

이런 건 볼 필요도 없는 거지. 그냥 내놓은 거야~ 팔리든지 말든지 하는 심정으로”


“이것 봐요, 여긴 고층인데 가격이 좀 싸지?

지금 여기 수리가 하나도 안된 집이거든. 수리가 전혀 안 되고 세가 들어있는 집은 싸요. 이런걸 사서 내돈 조금 들여서 고치면 아주 실속있게 사는 거지~”


“아 인테리어 하는데 돈 많이 안들어요?”


“인테리어 조금 했다고 2~3천만 원씩 비싼 집들 있는데,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놓은 모양에 혹해서 사는 신혼부부들이 있지~ 내 돈으로 그거 전체 고치는데 이 동네는 천만 원도 안 들어~ 수리 안 된 싼 집 사서 내 취향대로 고치는 게 훨씬 좋지~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는 거고”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인 2014년, 인테리어 라는 거에 무감각하던 때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거 아니었나?’

하지만 부동산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최대한 싸게 사서,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 사장님에게서 아기 엄마인 내가 진심으로 좋은 집을 구하길 바란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좋은 물건이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진 설명> 10층 집에서 내려다 본 놀이터 2014년


“아니 여기가 따뜻한 로얄동에 로얄층인데, 거기다가 여기 주인이 사법고시 시험 합격한 집이야~

아주 기운이 좋은 집이야~ 한번 와서 봐요~”


바로 해당 동 1층에서 사장님을 만났다.

신혼집에서 길 하나 건너면 되는 단지였다.


학원 많고, 마트가 즐비한 큰길 사거리에선 조금 멀어졌다.

시장과도 거리가 있었다.

그만큼 조용했다. 아기를 키우기 좋은 조건인 것 같았다.

해당 단지 안에는 초등학교도 있었다.


사장님을 따라 들어간 집은 집주인이 6년 전

세를 주고 나간 집이었다.

6년 동안 세를 한번도 올리지 않은 좋은 집주인이라고 했다.

강남에 변호사사무실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법고시를 패스했다는 것이다.

경찰을 하다 사법고시를 본 케이스라고 했다.

집주인 얼굴은 계약할 때까지 한번도 보질 못해 직접 확인한 바는 아니다.


이 집 말고도 두세집을 더 본 기억이다.

이 매물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매물 가운데 가장 쌌다.


좋은 동에 나름 로얄층이었지만,

집주인은 이제 신경 쓰기 싫다며 빨리 팔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사진 설명> 단지 내에서 뛰놀던 ... 2014년


6년 동안 세들어 살던 가족은 중학생을 키우는 집이었는데,

최근 전세가 오르고 있고

이번에 처음으로 집주인이 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나가게 됐다고 했다.

전세가 조금 더 싼 곳으로 가려고 한다는 거였다.


‘6년 동안 전세를 살면서, 세를 한번도 올리지 않았는데

결국 그만큼 돈을 모으지 못해서 더 싼 곳으로 가야한다니...

나는 절대 전세를 살면 안되겠다.“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나라에서 전세를 산다는 건 끊임없이

더 싼 집으로 밀려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진 설명> 2014년 이사 후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