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 창비, 2020년>을 읽고
며칠 전 기사를 통해 접한 기사 제목은
나의 심장을 저미게 했다.
「“기범이 잘못으로 몰고 가야 산다”_죽은 노동자를 탓하는 기업」.
한 대기업 조선소의 하청 업체에 고용되어 일한 김기범 씨가 일을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5kg 산소통만 지고 바다에서의 작업을 진행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2인 1조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하청 업체는 '노동자'만 탓하며 "멋대로 (바다에) 들어간 것"이라는 주장만 하고 있는 상황.
그의 죽음에 사과와 애도는 없었다.
대표는 잠적했고, 모든 문제의 화살은 죽음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노동자를 향했다.
(KBS 외, 2025.01.08.)
김기범 씨의 이름에서 소설 <철도원 삼대>의 주인공 이진오의 이름이 오버랩된다.
황석영 작가의 2020년 작품.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것은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내 고향의 이야기이며
동시대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빈 부분에 채워 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p620)”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 사회 백 년에 걸친 노동운동의 역사, 우리 모두 그 현장에 있음을
이백만→이일철→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원 삼대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엄밀히 4대에 걸친) 이지산의 아들 ‘이진오’의 노동운동과
이백만의 둘째 아들이자 이일철의 동생인 ‘이이철’의 항일운동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근현대 역사를 관통한다.
작가가 ‘한국문학의 빈 부분’이라 표현한 ‘근현대 산업화 시기’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았던 저항운동사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과거의 치열함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오늘날 노동자들의 현실은
읽는 내내 깊은 탄식과 함께 ‘오늘의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노동은 정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소설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이진오’는 현대를 살아가는 50대 공장 노동자로 하청 업체 소속이다.
크레인 위에서 셀 수 없는 날을 보내며 농성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요즘은 1년 넘는 시간을 크레인 위에서 보내도 알아봐 주지 않을 정도로 대중은
노동운동에 무심해져 있다.
들어주지 않는 외침,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싸움.
그렇다면 그저 숨죽이고 조용히 나의 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게 답은 아닐까.
하지만 작가는 이 외침이, 이 싸움이
이진오 개인의, 일부 노동자들에 국한되는 일이 아님을
역사를 거슬러 올라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숙이 누나) 우리를 무더기로 해고한 회사는 어디로 사려 졌겠니? 필리핀으로 갔지.
더 싸고, 더 만만하고, 우리보다 더 힘없는 노동자들이 있는 나라를 찾아서 통째로 옮겨간 거야.
거기서는 이제 겨우 시작인데 수십 명이 다치고 죽어나갔다더라.”
(이진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겁쟁이였어. 우리 가족이 삼대 빨갱이 집안이라는 소릴 들었거든.”,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쟁까지 겪으면서 우리 집 남자들 모두가 노동자였거든.” (p408-409)
숙명여대 권상우 교수는 서평을 통해 "지금 굴뚝에 오른 이진오를 얘기하기 위해,
삼대에 걸친 그의 조상들(이백남, 이일철, 이지산)의 삶을 묘사하는 게 아닐까"라고도 표현한다.
"지금의 이진오를 굴뚝에 오르게 만든 유구한 역사" 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진오는 크레인 위에서 상상인지 혼령인지 모를 이 땅을 떠나간 조상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추억 속 공간으로 이동해 과거 치열했던 노동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여준다.
즉, 이진오는 현재의 노동 현장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고 분출하며,
터뜨리는 인물인 동시에 과거 눈물겨운 탄압과 폭력을 버티고 이겨내 온 우리 역사를 불러오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일철’이란 인물에 깊숙이 몰입했다.
한 집안의 장남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가족의 생계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전통적 가족주의를
온몸으로 살아내는 인물이다. 나 역시 양가의 장자로 학창 시절 내내 모범적이고 자립적인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많은 이 땅의 가장들은 가족의 안위와 직업적 성공을 향해 앞만보고 달리기도 한다.
현재도 나는 항상 내가 원하는 삶과 가족을 위하는 삶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일철의 무거운 어깨가 내 마음을 조용히 울렸는지도 모르겠다.
이일철이 당시 안정적이고 누구나 선망하는 기관사라는 직업을 수행하며, 가정을 꾸리고,
아버지 이백만과 철도원이라는 가업을 잇는 동안 동생 이이철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항일운동의 꿈을 펼친다.
일철 자신도 못지않게 일제 식민의 차별과 불합리함을 느끼면서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가장이라는 무게.
모든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책임감은 아마도 오랜 시간 그를 짓눌렀을 것이다.
그랬기에 동생 이철의 옥사 이후,
그 누구보다 행동하는 항일운동가가 된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는 착실하고 책임감 많던 과거의 가장(p537)"이 더 이상 아닌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의 중앙위원이 되었고 영등포지역 전평 산별노조의 부지부장”이 된다.
아내 신금은 변화한 남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신금이는 해방되고 나서 남편이 급속하게 변해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온건하고 단정한 모습은 변하지 않았으나
적에 대한 증오와 결의는 단호했다.
그녀는 남편이 차츰 집안일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아우 이철의 죽음이 가슴의 못으로 깊이 박혀 있었던 때문인 듯했다.
(중략) 아우 이철이가 꿈꾸던 세상을 이루는 쪽의 편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p529)
늘 믿음직스러웠던 일철의 변화는 그래서 더 큰 울림이 있고, 그가 만들어갈 미래를 기대케 했다.
큰아들의 무겁고 치열한 삶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이백만이 죽기 직전
"한쇠야, 한쇠야"
두 번이나 장남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고 숨이 멎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먹먹하다.
남북으로 나뉘어 북에 남아 생사조차 모르게 된 큰아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리고 그 시절 이산가족의 아픔을 우리는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 시대적 흐름 반영일까
더불어 소설 처음부터 실질적인 이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는 ‘신금이’ 캐릭터는
소설계 노장 황석영의 시대적 흐름에 맞는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이자,
우리 역사 속 숨겨졌던 여성 서사의 발견이다.
그동안 남성 위주의 서사 중심으로 풀어갔던 작가는
<객지>, <가객>,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에서는
보지 못했던 차별화된 여성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다.
어찌 보면 황석영 작가가 시대적 흐름에 맞춰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부분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인 작가가 소설 집필 과정에서
운동사를 연구하며 밝혀낸 실제 한국 여성들의 저력이라 믿고 싶다.
지난 출판기자간담회에서 여성 인물 묘사가 입체적이라는 평에 대해 황석영 작가는
이들이 실존 인물에게서 나온 것임을 드러냈다.
“그간 역사에서 우리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빠져있습니다.
당연히 어머니나 누이들이 다 집안에서 감당하고 그랬던 일들인데 (중략)
구한말 때부터 백여 년을 지내오며 조선의 여성들이 겪은 일들은 대단하거든요.
저희 어머니만 해도 일찍 아버지 돌아가시고 마흔에 과부가 되셔서 개가는커녕
생활 전선에 나서서 사 남매를 다 대학까지 보내고 그랬는데.
역사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는 (여성들의) 간난고초가 더 심했죠.”
(2020. 6. 2. 철도원 삼대 기자간담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작가가 실제로 해당 캐릭터에 일정 모델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주안댁은 초등학교 때 가출했다가 만난 생선 장수 아주머니로
실제 집안에서 ‘주안 이모’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신금이는 우리의 신여성이던 자신의 어머니의 면모를 차용한 것이라는 것.
털털하고 입담 좋은 막음이 고모는 동네 아주머니.
무장투쟁에 전면 나서서 만주에서 활동했던
(이철이의 아내로도 잠시 살았던) 한여옥,
변절하지 않고 항일투쟁을 했던 박선옥 등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을 따왔다고 한다.
긴 세월 역사 속에 묻힌 여성 인물들을 발굴해 낸 셈이다.
이들중 작가 황석영이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로 꼽은 이는 ‘신금이 할머니’다.
신금이 할머니가 실질적인 이 집안의 가장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전부 챙기며,
일찍 죽은 시어머니인 장안댁의 혼영을 보고 소통하며
가정의 미래와 가족들의 신변을 예견하고 대비하는 인물이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애정이 갔던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신금이와 장안댁을 첫 번으로 떠올린다.
살다 보면 언제든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가족의 안위,
이를 경제적인 부분뿐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부분까지 아울러 치유하고 돌본다.
위기에 놓인 가족들의 곁을 영혼으로 맴도는 장안댁과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알아보고,
그녀의 의중을 가족에 전하는 신금은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백성의 불안을 돌보던 ‘여성 제사장’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 이야기는 수년 동안이나 전설처럼 부풀려져서 온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주안댁이라는 여자가 어찌나 헤엄을 잘 치고 힘이 천하장사인지
돼지 수십 마리를 물속에서 건져냈다고. p85
주안댁은 돼지를 끌어올리는 활약을 보여주고 나서,
건져 올린 잡동사니들 중에 부서진 집들의 부산물인 판자며 서까래 등속을 모아서
새끼줄로 묶어 뗏목을 만들었다. (중략)
주안댁의 뗏목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당산리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고 한다.
삿대질이 어찌나 빠르고 거세었던지 물속을 팍팍 찍는 동작이 춤추는 것 같았다고 그랬다. p87
(막음이 고모) “그이(장안댁)가 일철이 이철이 엄마 되는 이여.
집안 대소사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쓱 나타나군 하지.
걔들이 보통학교 다닐 때 올케가 죽어서 내가 오라버니 집에 가서 그 애들을 키웠잖아.” p179
신금이는 전통적 여인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당시 선진교육을 받으며 산업현장(방직공장)을 누비던 여성 노동자로
동기 손영순과 함께 1세대 여성 노동운동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이진오 세대에선 크레인 농성을 버텨낸 노동자 ‘영숙’으로 이어지며,
주체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해 온 근현대 여성을 그려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부녀자와 미혼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학교 문전은커녕 자기 집 담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아버지가 정해주는 남자에게 시집갈 날만 기다리는
수많은 자기 또래의 조선 처녀에 비해서 과감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던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공장의 남자 직공들보다도 선진적이었다. p145
2025년 오늘의 노동 현장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30년의 구상 끝에 태어난 소설 <철도원 삼대> 출판 기자설명회의 싸인회 작가는,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한 줌 먼지에 지나지 않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 문장을 적어 넣었다고 한다.
아마도 작가가 우리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나 싶다. 작가는 척박한 현실을 잊기 위한, 또는 힘겨운 과거 노동자들의 투쟁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날은 또 다른 양상의 문제들로 인한 새로운 노동운동의 역사가 쓰이고 있다 .
작중 손영순의 사례는 물론 일제강점기 지금 보다 더 강압적이고
폭력적 일들이 자행되던 시절의 일이긴 하나,
현행 주 40시간의 노동시간의 원칙에 제동을 걸며, 노동자의 삶보다는 기업가치나 이윤추구를 상위에 놓을 때가 많다.
신체적 폭력은 아니더라도 정신적이며 심리적 폭력은 여전히 우리 노동 현실에서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손영순이 성명서를 읽기 위하여 단상에 올라섰다.
그녀는 문건을 읽기 전에 먼저 자신이 겪은 이틀 전의 사건을 말했다.
“(중략) 우리 공장 규칙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공일날을 제외하곤 면회와 외출이 엄금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머니와 내 새끼를 만나겠다구 잠시 일터를 벗어나 정문 앞으로 갔건만,
나카가와 감독은 저희 식구를 못 만나게 하려고 쫓아 나와 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고
제 어머니의 뺨을 수차례 때렸습니다.
노인네는 코피가 터질 정도로 얻어맞았어요.
우리가 아무리 나라 없는 백성이지만 이렇게 서러운 처우를 받아야만 합니까?
우리는 나카가와 같은 감독 밑에서는 일할 수 없으니 그를 즉시 해고해야 마땅합니다.
현재의 작업시간 열세 시간은 원칙적으로 계약 위반입니다.” p169
산적해 있는 노동문제는 다양하기도 하다.
조선업계에서는 지난해(2024년)에만 20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적정한 산업재해 예방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 지난 1월 16일 정부가 발표한 '2024년 여성 경제활동 백서'에 따르면,
최근까지 여성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1만 8502원으로, 남성(2만 6042원)의 71% 수준이다.
우리나라 남녀임금격차 문제는 OECD 최하 수준으로 꾸준히 지적되어 온 문제다.
특히 비정규직의 경우 10년 사이 격차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여성들이 출산 및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으며,
수많은 비정규직 자리에서 노동하고 있다.
여러 업계에서의 비정규직 차별 또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손영순이 읽은 성명서의 내용이 과거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안대학교 정승재 교수는 <철도원 삼대>를 읽고,
“인간중심의 사상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 점차로 퇴색하게 된다.
즉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다시 인간을 둘로 나누어 자본가를 신격화하고
노동자는 이윤추구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기에 이른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신분 갈라 치기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자본주의화가 결국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신분 계급을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실제로 <철도원 삼대>에 일제강점기를 지나 남북 분단의 세월을 이겨내고도,
여전히 억울한 노동자 계층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또 다른 노예가 되었다.
이와 같은 구조의 최상단에는 권력과 돈이 핵심이다.
더 많이 가진 자, 더 힘센 권력의 나라에 의해 지배받는 것은 여전하다.
위 ‘김기범’ 씨의 사례도 그러하다.
물론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남북한 전쟁 전후,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지 못하고
그저 인내해야만 했던 과거에 비해, 농성과 촛불집회, 1인 시위 등으로
보다 적극적인 노동운동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외침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소수다.
누가 이 구역의 ‘서발턴’이 될 것인가.
. 크고 작은 노동 현장의 사건 속에서 가진 자의 폭압 앞에 ‘말할 수 있는 자’가 될 용기,
당신은 그 용기를 낼 수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 용사들의 죽음으로 나아진 현실에 감사하면서,
이 구역의 ‘서발턴’이 되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늘 그렇듯 변혁의 시작은 국가, 조직, 시스템에 의한 것이 아닌,
우리 한 명 한 명의 개인에게서 일어난 것이기에. 또 개인이 모인 우리가 쟁취해 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