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2022년>을 읽고
‘대출 불가, 예약 5인 완료’
지역 도서관 4곳과 작은 도서관 2곳의 도서 검색을 하는 순간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요즘 인기 최고 베스트셀러라는 말은 여기저기서 들었지만,
35만 명이 사는 서울의 한 지역구의 전 도서관에서 대출이 안 될 정도라니.
결국 구매 버튼을 누르고, 마침내 나와 김기태작가와의 인터내셔널을 이루게 된다.
평소 ‘언어유희’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하다. 아무래도 직업적으로 이런저런
다양한 언어적 표현을 구사해야 했기 때문에, 텍스트상 ‘익숙한 단어의 색다른 쓰임’,
‘이색적인 문단 배치’, ‘문장과 문장의 오묘한 대구법’ 등을 접할 때면 어디서도 느끼지 못한 희열을 느낀다. 도파민이 터진다. 김기태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첫 만남이었는데,
그의 단어, 그가 문장을 다루는 기술은 가히 그간 접했던 소설가들의 ‘언어유희’의 최고봉으로 꼽을 정도였다. 참신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나의 뇌를 깨웠다.
단편소설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작품은
언어유희의 놀이터가 된 「롤링 선더 러브」와 작품의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다.
모 방송사의 남녀 리얼리티 데이팅 프로그램인 ‘나는 solo’를 떠올리게 하는「롤링 선더 러브」는
요즘 한국 사회 남녀의 진실된 사랑의 꼬집기, 뒤틀어보기, 풍자를 시도한다.
김기태 작가는 단편마다 2030 젊은 세대의 풍속(사랑과 관계)을 드러내는데,
이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도 마찬가지다.
단, 이번 편이 갖는 차별성은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소외계층 ‘한부모 가정의 자녀’,
‘다문화 가정의 자녀’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는 김기태가 단편집에서 추구하는 요즘 시대 평범함을 건조한 문체로
사실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 안에서 보편성과는 다소 동떨어진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 작가가 던지는 화두,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더욱 강렬하게 고민하게 한다.
한국 2030 남녀의 블랙코미디와 같은 사랑, 「롤링 선더 러브」
<롤링 선더 러브>의 주인공 조맹희는 자신도 소개하는 그대로 37세 독신 여성이다.
‘맹희의 대모험’이란 이름의 블로그를 21세 때부터 운영해 왔지만 간헐적으로 포스팅하며,
“제이슨 므라슨의 <I’m Yours>와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사이,
다케우치 마리아의 <Plastic Love>와
시스타의 <나 혼자> 사이에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물건을 버리면서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이며
2030을 보냈다. 주인공 맹희에 대한 소개도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유행가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머릿속에 연상되는 장면들이 주는 시대적 흐름을 통해
주인공의 청춘기를 어림잡아본다.
한때 나 자신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첫사랑 후 떠다간 쓰라린 봄날을 보냈을 것.
일본 시티팝이 유행하던 호황기와 같은 화려한 20대는 노랫말처럼
'난 단지 게임을 하고 있을 뿐, 나도 알아 이게 가짜 사랑이란 걸'이라 되뇌는 연애를 했을 것이다.
지금은 <나 혼자>.
혼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둘이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전언에 맹희는 동의했다. 혼자를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 것. 적극적으로 혼자됨을 실천할 것. 연애는 옵션이거나 그조차도 못 되므로 질척거리지 말고 단독자로서 산뜻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 p47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혼자의 삶이 익숙해진 삼십 대 후반의 이 여성은
“앞으로 십오 년 정도는 업계에 근근이 붙어 있”으면서, “작은 빌라”정도를 배입해
국민연금 나올 때까지 버티고, 풍족하진 않지만 크게 부족하지 않은 노년을 그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무의식에서 “아 근데, 나는 사랑이 좀 하고 싶다.”p49는 진심이 떠오르며,
그녀 일생일대 예상치 못했던, 어찌 보면 즉흥적이었다고도,
아니면 그동안 억눌러왔던 무의식 감정의 폭발이었을 ‘방송출연’을 결심하게 된다.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 <솔로농장> 여기서 맹희는 ‘완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채소 이름이 붙여진 출연자들의 방송 페르소나는 마치 실제 방송인
‘나는 solo’ 짝퉁 버전인가 싶다.
하지만 이내 이와 같은 액자식 구성, 소설 속 또 다른 소설과 같은 표현 방식이 사실은
우리 사회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블랙코미디라는 걸 느끼게 된다.
보통 나이가 많고 마음도 넓은 큰언니 역할의 ‘감자’,
남자를 자주 울리는 까도 까도 매력이 나오는 ‘양파’,
야채가 아니라는 듯 의뭉스러운 매력으로 판을 흔드는 ‘토마토’.
그 안에서도 주인공은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완두’.
완두는 그 안에서 짝사랑하게 되는 담당 pd에게 따뜻하고 향긋하며 건강에도 좋은 ‘우엉’이란
이름도 붙여주며, 혼자만의 짝사랑을 키우기도 한다.
‘나는 solo’의 시청자가 아닌 출연자가 되어보는 ‘입장전환’을 통해
독자는 나의 사회적 가면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나는 감자인가 양파인가, 혹은 완두인가.
맹희 역시 고백한다. 이후 방송을 보며 “완두는 맹희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일부이기는 했다”
p70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인생을 반도 안 산 사람에게 어떻게 ‘도태’되었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지. 596명이나
거기에 추천을 누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의아했다. 맹희 자신도, 감자도 토마토도 양파도 그들이 비난하는 만큼 잘못한 건 아니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많은 남자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무엇을 속이거나 팔아넘기겠다는 말로 번역해서 들을까. 맹희는 집요하고도 악랄한 댓글 228개 아래에
익명으로 슬쩍 썼다. ‘너네는 어쩌다 이렇게 좆같아졌어?’ p70
'너네는 어쩌다 이렇게 좆같아졌어?'
이처럼 작가는 짧은 단편 속에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담담하면서도
풍자적으로, 하지만 쉽게 웃을 수 없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오감을 뒤흔들어 놓는다.
현실은 늘 해피엔딩일 수 없다는 듯. 기적은 어느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듯.
결국 맹희는 어떠한 결실도 맺지 못했지만, 나직이 “사랑하고 왔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작가는 현실을 보고, 뒤틀기도 하지만, 현실의 노래를 듣고, 느끼고, 독자와 담담히 대화한다.
‘두 사람의 역사는 길다.’로 시작하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아주 평범한 서울 동북부 한 중학교에서 만난 진주와 니콜라이.
이들의 인터내셔널은 학교 행정실에서 봉투(차상위계층 학사제도 관련 서류일 듯) 받는 사이로 이어진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세세히 묘사하는 행동이나 사건은 없지만, 위처럼 ‘행정실에서 봉투 받는’이랄지,
입시에서 ‘기회균형’이나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통해
이 둘의 처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는 마치 사회가 (대놓고) 차별하고 있지 않고
동등한 기회와 배려를 제공하는 듯 하지만, ‘일반적’,‘ 평범함’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조용한 선긋기다.
주류의 세상과 동떨어진 채 이 둘의 정체성은 형성된다.
그렇게 조용한 차별을 드러낸다.
진주는 서울 변경의 사 년제 대학 행정학과에 기회균형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해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니콜라이 역시 특성화고에 진학해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하지만 여전히 외국인근로자 처우를 받는다.
그가 귀화하려면 영주권을 취득해야 하는데 그건 규정상 연봉 삼천팔백만 원 정도를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트는 스태프를 일 년 이상 연속해서 쓰지 않았다. 계약이 끈나가고 있었다. 이번엔
공무원 시험에 붙어야 했다. 오후 네시에 근무가 끝나면 카페로 갔다. 마트 계열사라 스태프는 삼십 퍼센트 할인을 받을 수 있었고 커피가 맛있었다. 스티커를 예쁘게 붙인 노트북으로 작업에 열중하거나 서로 볼을 꼬집는 연인들 사이에 있으면 자신도 그럭저럭 평범한 이십대로 살고 있는 듯했다. p128
니콜라이는 파견 계약을 연장했다. 정규직으로 전화되리라는 기대는 옅어졌다. 극히 드문 일이었고 외국인에게는 더 어려웠다. 오히려 인력을 내보낼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공장에 오래 다닌 아저씨들은 새 정권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손보면 다시 2조 2교대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중략) 니콜라이도
셈을 해봤다. 주당 72시간을 근무한다고 치면 연 삼천팔백만 원을 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p129
둘은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어렴풋이 삶의 경계를 느끼며 살고 있다.
연봉 삼천팔백만 원을 받는 삶은 현재 불가능하고,
보편적이라 불리는 주류의 삶에 편입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만의 연대를 시작한다.
사랑 아닌 사랑.
연애 아닌 연애와도 같은 이들의 관계를
“우리는 친한 사이야”라는 말로 잠정 결론 내리며, 농담인 듯 아닌 듯. 함께 한다.
그리고 세상과 그들과 ‘좋은 친한 사이 시도’를 해가며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한다.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사라진 뒤 조용히 일렁거리는 커튼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남 얘기 같았다. 예쁘고 멋있고 촉감 좋은 물건들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자아실현 같은 건 모르겠지만 견딜 만한 일을 하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삶. 가끔은 나란히 누워서 햇볕을 쬘 사람이 있는 삶. 이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어두운 골목을 걸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불안해졌다. 어느 날 흰 봉투가 날아와 계약 종류 통지서나 처음 들어보는 병명의 진단서를 덜컥 내놓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p133
하지만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예를 들면 로또 당첨과 같은 기적 같은 행운이 오지 않는 한
이 두 사람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나아진다는 것의 의미는 ‘정확하고 깔끔한 자본주의의 맛 p136’과 같은
삶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삶을 '잘 사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단편집 가운데 「전조등」에 등장하는 ‘우수한 학점과 빈틈없는 스펙’ ,
‘빼어난 외모는 아니었으니 성실히 쌓은 취향과 매너’로 평가되는
중산층의 성공한 삶.
하지만 주인공의 진짜 인생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갇힌 세상 속 ‘예쁜 풍경’만을 연출하고 있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진주와 니콜라이는 불안하지만 ‘어쩌면 진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사회 시각에서 벗어나면 이들의 삶을 어쩌면 ‘행복’과 더 근접한 삶일지 모른다.
짧은 단편들의 모음이지만,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너는 진짜 너로 살고 있느냐고, 그게 진짜 행복이냐”라고
작가는 끊임없이 묻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너도 남들이 규정해 놓은 ‘성공한 삶’의 틀 안에 들어가기 위해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멈추고 있는 건 아니냐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순간,
대중이라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까 두려워 억눌러 숨기고 있는 건 아니냐고 말이다.
나도 아직 MZ세대라고 우겨본 적도 있었으나,
이번 작품을 읽으며 나는 요즘 MZ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전형적인 요즘 꼰대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김기태가 오감을 통해 전하는 MZ의 사랑과 일, 꿈과 실제는 내 예상과 달리 담담하지만 씁쓸했고, 이내 슬퍼졌다. 머리로만 알던 젊은 삶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작가가 일관되게 사용하는 건조한 문체(노래)는 요즘시대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좋은 수단인듯하다.
그 리얼리즘이 표현하는 '좁고 갇힌 현실도피와도 같은 자본주의의 맛'은
그래서 더 쓰디쓰다.
그들에게 차마 "열정을 갖고 끈기 있게 삶에 도전하고 개척하고 발전하라"고 말할 수 없음을 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도전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