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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Aug 17. 2022

역사의 역사


작가 유시민의 화려한 필력에 대한 끌림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해져서 결국 '역사의 역사'를 읽고 말았다. 내가 '읽고 말았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용이 가볍지 않아서 읽기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작가 유시민이 썼기에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몸에는 좋아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데 너무  쓰고 질겨서 먹기 힘든 음식이 있다고 하자. 이를 달콤하게 맛을 내고 잘게 갈아서 떠먹여 줬다고 할까? 읽는 내내 그런 기분이었다.

    

'역사의 역사'는 오랜 세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거나 다른 역사가들의 역사 서술 방식에 큰 영향을 준 역사서들과 그 책들을 집필한 역사가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다루는 역사서는 아래와 같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사마천의 '사기'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레오폴트 폰 랑케의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 '강대 세력들, 정치 대담, 자서전'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박은식의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오스발트 A. G. 슈팽글러의 '서구의 몰락'

아널드 J.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역사서들이다.


유시민 작가는 책의 성격에 대해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역사학은 학술 연구 활동이지만, 역사 서술은 문학적 창작 행위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역사 르포르타주 (reportage, 르포)'로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한다. 르포는 저널리즘 (사실 보도), 역사 서술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 문예 창작 (예술적 감정 표현)을 넘나드는 문학 장르이다."



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작가 유시민에게 놀란 점은 2,500여 년을 넘나드는 역사서들을 하나로 꿰서 완전히 새로운 역사 르포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그것도 역사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말이다. 이 사실은 작가가 그만큼 높은 수준의 지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기원전 400년 경에 '역사'를 쓴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글이 2천5백여 년 이후에 나온 글과 함께 버무려져서 새로운 글로 재탄생된 걸 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도 비 역사가에 의해 쓰여졌다면 말이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대표적인 내용을 발췌해서 요약해 본다.



최초의 역사가는 누구인가?- 헤로도토스 vs 투키디데스


최초의 역사가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두 가지 답이 존재해왔다.


로마시대 정치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B.C. 106~B.C. 43)는 B.C. 425년 무렵에 '역사'를 쓴 헤로도토스에게 최초의 역사가이자 '역사의 아버지'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레오폴트 폰 랑케 (1795~1886)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를 최초의 역사가라고 지목했다.


이들이 각각 다른 사람을 지목한 이유는 추구하는 역사 서술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다. 즉, 키케로는 이야기를 중시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헤로도토스를 지목한 반면에, 랑케는 사실의 기록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사실을 검증하고 해석하는 솜씨가 빛났던 투키디데스를 지목한 것이다.


저자는 누가 최초의 역사가인지 보다는 이 두 사람의 역사 서술에 대한 태도에 주목한다. 두 사람 모두 중립적 입장에서 역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했다. 아래 인용문을 보자.


"'세계대전'의 역사를 쓴 그리스 사람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공정하게 대했고, '내전'의 역사를 쓴 아테네 시민 투키디데스는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공정하게 다루었다. 그들이 어느 한쪽을 감정적으로 편들었다면 사실을 편향되게 기록하고 해석했을 것이고,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인류의 문화 자산이 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두 전쟁이 2,500여 년 이후의 후손들에게 큰 교훈이 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으로 기적적으로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는 이후 두 동맹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다 결국 모두 멸망하고 만다. 더 높은 수준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아픈 역사가 후손들에게 실제 교훈이 되지는 못했다. 여전히 크고 작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역사가 중 누가 최초의 역사가인지 와 상관없이 그들이 쓴 역사를 오늘을 사는 우리는 여전히 주의 깊게 읽어야 될 것 같다. 앞으로라도 교훈이 될 수 있게 말이다.



최고의 역사서 '사기' - 별이 아닌 우주를 그린 사마천


위 두 역사가가 일련의 전쟁을 중심으로 역사를 썼다면 사마천은 수천 년에 걸친 중국이라는 한 나라 전체의 역사를 썼다. 전설과 신화의 시대부터 한 (漢) 왕조에 이르는 수천 년 동안 벌어진 수많은 전쟁, 국가의 흥망, 사회 제도의 변화 등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사기'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저자는 두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 사마천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와는 달리 민간인이 아닌 국가 기록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정의 기록과 의전을 담당하는 '태사령'으로 일하면서 '무제' 밑에서 달력을 개편하였으며, 15년이 넘는 세월을 '사기' 집필에 쏟을 수 있었다.


둘째, 사마천은 B.C. 99년 '이릉의 화'에 연루되어 치욕적인 거세형을 당한다. 흉노와 싸우다 패배한 이릉 장군이 부하를 구하기 위해 거짓 항복을 했는데, 이를 배신으로 생각한 무제가 이릉의 일족을 몰살한 사건이 '이릉의 화'이다. 사마천은 이릉의 무고함을 알고 그를 변호했다가 궁형 즉, 거세형을 당한 것이다. 이 치욕이 사마천으로 하여금 무제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게 하였고 '사기'로 승화했다는 것이다.


사기에 실린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사마천의 한 맺힌 포부가 드러나있다. 아래 인용문을 보자.


"이 책을 저술하여 명산에 감추어 두었다가  제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하여 성읍과 큰 도시에 유통하게 한다면 이전에 받은 치욕에 대한 질책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만 번 도륙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할 수 있겠습니까?"


저자는 사마천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가하고 있다.


"무제는 올곧은 신하를 박해한 어리석은 군주가 되었고 사마천은 2,000년 넘는 세월 동안 지식인과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니, 이토록 우아하고 지성적인 복수가 문명의 역사에 또 있을지 모르겠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역사서를 한 권만 뽑는다면 '사기'가 가장 강력한 후보가 되는 게 마땅하다. 사마천은 역사를 역사답게 쓴 중국 문명 최초의 역사가였다. 이전의 역사서가 저마다 별 하나를 그렸다면 사마천은 우주를 그렸다. 인류 역사에서 혼자 힘으로 그런 작업을 해낸 역사가는 오로지 그 한 사람뿐이었다."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치욕적인 궁형도 극복하고 '중국사'를 집필한 사마천에게, 중국 국민뿐 아니라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모두 고개 숙여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인류사의 등장 - 역사에 과학을 입히다


20세기 후반 '인류사'라는 역사 서술의 새로운 흐름이 탄생했다. 역사가들이 과학적 발견과 지식을 역사 서술에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가 우주의 탄생, 지구의 형성, 인류와 문명의 등장 및 발전 등으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600년 전에 이미 이러한 분야가 탄생했으니 그 주인공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이븐 할둔(1332~1406)이다. 그는 '역사서설'에서, 세계를 일곱 기후대로 나누어 환경과 문명의 관계를 살피면서 인류사를 썼다. 과학과 역사의 첫 만남이었다. 아래에 그중 일부를 인용해 본다.


"지구의 형태는 공 모양이고 물에 둘러싸여 있다. 육지는 지구 전체의 반에 약간 못 미치며, 공 모양의 표면 위에서 북쪽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 육지의 거주 가능 지역은 전체의 4분의 1에 달하며 이는 다시 일곱 개의 기후대로 나뉜다. 문명은 태양의 열기가 온화한 제3, 제4 기후대에서 가장 발달하며, 더 춥고 건조한 제5, 제6, 제7 기후대로 연결된다."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은 7세기에 탄생한 이슬람 문명과 아랍 사회의 현황과 특징을 기록했다. 그 덕분에 '역사서설'은 이슬람 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귀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문명사를 연구한 인물은 아널드 J. 토인비 (1889~1975)이다. 그는 이전에 민족이나 국가를 단위로 역사를 서술했던 것과 달리 문명을 단위로 역사를 연구했다.


본격적으로 과학을 역사에 도입한 사람은 제레드 다이아몬드 (1937~)이다. 그는 역사학자가 아닌 생리학,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등을 연구한 과학자이자 작가, 저널리스트였다. 그는 '총균쇠'에서 대륙별로 발전 속도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각 대륙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총균쇠'가 지닌 특별한 점은 과학자가 쓴 역사서라는 것이다. 역사를 과학화하려고 한 것이다.


'총균쇠'가 과학자가 쓴 역사서라면, '사피엔스'는 역사학자가 쓴 과학사이다. 유발 하라리 (1976~)는 인간을 사피엔스라고 하는 생물의 일종으로 보는 사회 생물학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는 자연선택의 결과물인 사피엔스가 자연선택의 지배를 벗어나 지적 설계가 통용되는 새로운 역사의 단계로 넘어가려 한다고 주장한다. '사피엔스'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약 135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30만 년 후에 원자라는 복잡한 구조가 형성되었고,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었다. 약 38억 년 전 지구 행성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 크고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생물을 만들었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문화를 만들었다. 그 문화가 발전한 과정을 역사라고 한다. 역사의 진로를 만든 것은 세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만 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척을 가속했다. 과학혁명은 겨우 500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역사의 종말을 부르거나 무언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 세 혁명은 인간과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유발 하라리가 7만 년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을 역사의 출발점으로 본 이유는, 사피엔스가 이 혁명으로 문명을 만들어 낼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저자 유시민은 유발 하라리의 생각 즉, 사피엔스가 자연선택의 굴레를 넘어 지적 설계의 세계로 들어가 결국 신이 되려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유발 하라리의 독창적인 역사관을 극찬하고 있다. 아래에 저자 유시민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는 인간이 자연선택의 역사를 종식하고 지적 설계의 역사를 열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주를 탐사하고 유전자를 조작한다고 해서 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피엔스는 생명공학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켰지만 생명이 없는 물질로 생명체를 만들지는 못한다. 그가 사피엔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나는 그 두려움의 근원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런 점에서 '사피엔스'는 훌륭한 역사책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H. 카가 답하다


역사를 얘기하면서 에드워드 H. 카를 빼놓을 수 없다.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에드워드 H. 카의 생각에 기반한 저자의 역사에 대한 생각을 인용해 본다.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살아남는 게 아니다. 기록하는 사람이 선택한 사실만 살아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렇다. 역사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 광해군이 폭군인지 당파 싸움에 희생된 실리외교 전문가인지는 그의 행적을 역사가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역사의 역사'를 읽고 나면 마치 헤로도토스가 다시 살아나서 유발 하라리와 '역사가 시작한 시점'에 대해 난상 토론을 벌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로 에드워드 H. 카의 역사에 대한 정의 덕분인 듯하다.



지금까지 발췌, 요약한 부분 외에도 '역사의 역사'에는 주옥같은 역사 얘기가 수없이 많다. 다만, 워낙 방대한 시대에 걸친 내용이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완독 하려면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파피루스에 동물뼈로 글을 새기고,  죽간에 먹으로 글을 쓰던 시대로부터 인터넷으로 모든 필요 정보를 모을 수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존재한 것이 있었다. 바로 역사를 기록하고자 하는 인류의 굳은 의지이다.

 

'역사의 역사'는 2,500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 서술 의지의 결과물에 대한 찬사이자 감사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마음의 자양제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맛나게 버무려서 떠먹여 주기까지 하니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작가로서 유시민의 진가가 드러나는 책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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