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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Mar 22. 2021

러시아 노 교수에게서 배운 배려의 기술

배려에는 관심과 정성이 필요하다

배려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다. 즉, 관심과 정성으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준다는 뜻이 될 것이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면 배려석이란 것이 있다. 임산부, 노약자 등 타인의 배려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좌석이다. 보통 비어있어도 아무도 앉지 않는다. 비워두는 것부터 배려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곳곳에서 배려를 주고받는다.


회의할 때 상대방의 말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지인과의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것 등 모두가 사실은 배려이다. 그런데,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잘 안 지켜질 때도 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가끔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본인한테도 안 좋겠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다.


이렇듯 배려는 매우 중요하면서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가 동일한 우리 국민들 사이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배려의 본능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과의 사이에는 어떨까? 과거 경험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3년 전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교수와 만난 적이 있다. 공동 연구 협의를 위해 방문했다. 보통 해외 대학의 교수, 특히 좀 유명한 분들은 국내 기업 연구소에서 만나자고 하면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정보만 알아내고 돌아가서는 연락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워낙 의사 결정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생기는 일인데, 외국인들은 이해 못 할 때가 많다. 나도 걱정이 돼서 정중히 메일을 쓰고 비밀유지 서약서도 쓰자고 했더니 흔쾌히 만남을 허락했다. 나의 배려가 통한 것이다.



Univ. of Toronto


이름과 사진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완전한 러시아인 노 교수님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발음까지 완전히 러시아식이어서 영어를 하는지 러시아어를 하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중간중간 '스키', '코프' 등과 같은 발음만 반복되는 듯했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좀 이따가 동양계 학생이 왔다. 자기 과의 한국인 유학생을 부른 것이다. 난 그때 처음 동포애를 느꼈다. 이제 더 이상 러시아 발음에 주눅 들 필요 없이 한국 학생의 통역에 기대면 되기 때문이다. 나에겐 최고의 배려였다.


얘기가  대략 끝나고 큰 틀에서 공동 연구에 합의를 했다. 노 교수님이 차 한잔하자고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 차는 어디서 나오나 유심히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씩 웃더니 서재 수납장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깜짝 놀랐다. 한국산 고급 소주였다. 방금 통역한 학생이 한국 다녀오면서 사온 선물이라며 한국에서 오셨으니 딱 한 잔만 하자는 것이다. 시차 때문에 졸리기도 하고 한 잔은 괜찮겠다 싶어 같이 마셨다. 순간 긴장과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려서, 교수님의 영어가 잘 들리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노 교수님의 두 번째 배려였다.   


이렇게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고,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 식사도 함께 했다.

물어보니, 내가 너무 긴장한 듯 보여 풀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본인 영어를 못 알아들을까 봐 미리 한국인 학생을 대기시켜놨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내가 연락해올 때 매우 정중히 절차를 거치는 모습에 남다른 배려심을 느꼈다는 말도 했다. 배려에 더 큰 배려로 화답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고 있는 분이라 한 번 만나기도 힘든데, 첫 만남에 공동 연구 성사까지 갔으니 나로서는 대성공이었다.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배려로부터 출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언어와 문화가 같든 다르든, 먼저 관심과 정성으로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반드시 화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배운 일화이다.  


러시아 노 교수님에게서 배운 배려의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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