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드퓨처 Aug 22. 2022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중고서점에 갔더니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책이 있었다. 제목에 이끌려 뽑아 들고는 한참을 읽어 내려갔다. 도대체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정말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말인가? 무척 궁금했다. 저자와 출판사는 참 제목을 잘 정한 것 같다. 나처럼 제목에 이끌려 무작정 읽어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우선 서론과 1장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었다. 그 결과 제목에 엄청나게 울림 있는 뜻이 숨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한다. 한 번 결정을 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후회하게 되어있다. 후회한다는 것은 내가 주체적으로 내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내가 행한 일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라면 후회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내 삶의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은 후회라는 부작용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회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이미 행한 행동에 대해서 하지 않았으면 하는 후회이고, 둘째는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했었다면 하는 후회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전자에 해당하는 후회는 짧게 끝나는 반면, 후자의 후회는 오래 지속된다고 한다.


즉, 두 명이 임용 고시 준비를 하다가 한 명은 응시를 했고, 다른 한 명은 해도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응시를 하지 않았다. 응시했던 사람은 비록 떨어졌지만 짧게 후회하고 다른 일을 찾아 잘 사는 반면, 응시도 하지 않은 사람은 평생 "그때 시험을 보는 건데" 하며 후회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심리적 면역 시스템이 발동해서 낙방에 대한 후회를 짧게 정리한 반면, 후자는 시험을 안 봤기 때문에 결과를 알 수 없고 따라서 현실을 이겨내려는 심리적 주의 집중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른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거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니까 일단 하고 보라"고.


그런데, 위에 설명한 두 가지 후회가 성별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즉, 여자는 주로 행한 행동에 대해 "하지 말걸 그랬어" 하고 후회하는 반면, 남자는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그때 그렇게 하는 건데"하고 후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후회가 짧고 남자는 후회가 길다. 그래서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남자에게 더 오래간다고 한다. "그 여자와 결혼하는 건데.."


김정운 작가는 남자이므로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첫사랑과 결혼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오히려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엔 더 이상 '하지 않은 행동'을 후회하면서 인생을 낭비하기 싫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즉, 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후회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되도록 짧게 하고 현실에 집중하겠다는 깊은 뜻이 책 제목에 담겨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책은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정운 작가 특유의 위트와 다소 튀는 내용들이 눈길을 끈다. 너무 제목에 의미를 두면 안 될 것 같다. 하나같이 심리학적 의미를 담은 상징적 문구들이다. 소제목이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으로, 꼭 남자들을 위한 책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남녀 누구나 읽으면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지난 일에 대해 후회가 많은가? 그렇다면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다.


이 책은 아내와의 결혼을 예로 들어 삶의 주체적 결정을 얘기하는 문화심리학 에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집사람과의 결혼이 정말 후회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