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심리학 교수였던 작가 김정운은,억지로 학생 지도를 하며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본인의 모습을 깨닫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나이 50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이 책은 일본 생활 4년 동안 느낀 점을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철저히 혼자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서문에 나와있는 저자의 생각을 보자.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바쁠수록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망가진 내 자신을 마주 대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자꾸 그러는 겁니다. 그러나 내 상처는 그런 식으로 절대 치유되지 않습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개인적으로 와닿는 내용을 발췌해보았다.
"떨어지는 낙엽에 늙어가는 것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 가을에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만 기억해야 한다. 또 먼 훗날 즐겁고 가슴 찡하게 기억할 만한 것들을 죽어라 만들어놓아야 한다. 앞으로도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라고 낙엽도 지고 단풍도 드는 거다."
17세기 요하네스 호퍼 (Johannes Hofer, 1669-1752)라는 스위스 의사가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노스탤지어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리스어의 '귀향'을 뜻하는 '노스토스 (nostos)'와 '고통'을 뜻하는 '알고스 (algos)'를 합쳐 만든 단어가 노스탤지어 (nostalgia)다. 스위스 용병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심신의 고통을 호소하자 이를 뭉뚱그려 노스탤지어라고 칭한 것이다. 의학에서는 이처럼 정신병리학적 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심리학에서는 향수와도 또 다른 조금은 복잡한 심리 상태로 해석된다.
저자는,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과 같이 무어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그러나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종류의 기억을 심리학에서는 '노스탤지어'라고 한다고 얘기하며, 그렇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 노스다코다 주립 대학 심리학과의 로웃리지 (C. Routledge)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노스탤지어야말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고 얘기한다. 즉, 노스탤지어가 잘 작동하는 사람은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며, 자의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을 더 잘 견딘다는 것이다.
노스탤지어의 세 가지 심리적 기능이 긍정적 기분, 의미 부여, 관계 형성이라고 얘기한다. 즉, 외로울 때나 우울할 때, 아름답고 따뜻했던 시절의 노스탤지어가 작동해서 삶을 의미 있고 즐거운 것으로 되돌려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노스탤지어가 결핍되지 않게 순간순간을 즐겁고 아름답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
"풍요로운 노스탤지어의 가을을 보내야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다. 곧 추워진다."
장마가 그치고 무더위의 고비를 넘기면 어김없이 가을이 올 텐데, 떨어지는 낙엽에도 슬퍼하지 않게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쌓아야겠다.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온 사람들은 그동안 막혔던 것이 뻥 뚫렸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는 평소 생활하는 곳과 전혀 다른 장소에 가게 되면 머리도 환기가 되고 새로운 생각도 떠오르는 걸 경험하게 된다. 아주대학교 김경일 교수는 이런 현상을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월러스 (Graham Wallas, 1858-1932)의 부화 개념으로 설명한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즉, 창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닭이 조용히 앉아 알을 품고 있는 부화의 시간처럼 몸과 마음이 문제로부터 잠시 떠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맥락을 심리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는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을 설명한다. 인간은 사물을 지각할 때 사물의 각 부분을 따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형태, 즉 '게슈탈트 (Gestalt)'로 파악한다. 이때 중요한 부분은 전경이 되고 나머지는 배경이 된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 아웃포커싱과 같은 원리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즉, 삶의 맥락이 바뀌면 전경이 배경으로 물러나고 배경이 중심 전경으로 올라온다. 그런데, 간혹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의 맥락이 바뀌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속 "아 옛날이여"를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삶의 게슈탈트 형성이 망가졌다고 표현한다. 특히, 고위 공무원, 교수, 회사 임원, 장군, 정치인 같은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한테 이런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삶의 게슈탈트를 바꾸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거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어야 삶의 게슈탈트가 건강해진다고 얘기한다.
둘째, 사는 장소를 바꿔야 한다. 장소가 바뀌면 생각과 태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바꾸는 것이다. 전혀 몰랐던 세상에 대해 흥미가 생기면 공부하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경험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아무튼 나 스스로 게슈탈트 전환이 가능해야 한다. 스스로 안 되면 남에 의해 억지로 바뀌게 된다. 아, 세상에 그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다."
저자는 본인 스스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출발을 함으로써 스스로 게슈탈트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저자가 일본에 건너가고 1년 후에 지인들이 저자를 보러 찾아왔는데, 하나같이 저자가 느려졌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말투도 걸음걸이도 모두 느려졌다는 것이다. 지인의 반응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마도 속으로 '이거다' 싶었을 것 같다.
"바로 그거였다. 지난 몇 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늘 빨리 말해야 했고, 남이 느리게 말하면 짜증 내며 중간에 말을 끊었다고 얘기한다. 조교나 학생들의 느린 일 처리에도 불같이 화를 냈다. 정작 자신은 약속 시간에 수시로 지각했으며 바쁘다며 항상 먼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그의 삶은 비로소 정상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혼자 생활하다 보니 청소, 설거지, 빨래 등을 모두 스스로 해야 해서 정작 글 쓰는 시간은 얼마 없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초조해했을 그지만 이제는 천천히 생각하고 읽고 쓴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분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따라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행복은 추상적 사유를 통한 자기 설득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한 진정한 자유를 얘기하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를 예로 든다. 아름다운 질그릇을 만들기 위해 물레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며 자기의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조르바식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얘기한다. 추구하는 바가 분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아름다운 가치를 위해 자신의 손가락 정도는 자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접한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자유를 얻었지만 가끔씩 엄습하는 불안에 대해 조르바식 최면을 건다. "그따위 두려움은 개나 물어가라지!" 저자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네 번 읽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김정운 작가 특유의 유머와 재치, 위트가 느껴진다. 따뜻하고 통쾌하고 또 시원하기도 한 한 편의 심리 에세이다.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사람, 일상에 지친 사람, 그 외에도 커피 한 잔과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