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는 지루할 틈 없는 매혹적인 표현으로 지식 교양서와 감동 체험 극복기를 넘나들며 독자를 면역항암의 세계로 안내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저널리스트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자료 조사와 공부를 바탕으로 전문가 못지않은 수준의 정보를 담아냈다. 또한, 저널리스트답게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만큼 가독성도 좋고 시종 긴장감이 유지된다. 여기에는 의사가 번역을 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 듯하다. 최근 읽은 지식교양서 중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면역항암요법은 3세대 항암요법으로, 1세대 (방사선 요법), 2세대 (화학 요법)와 달리 암세포 자체를 타깃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암세포와 비교적 상관이 없는 면역시스템을 타깃으로 한다. 거기에다 재현이 되지 않는 점과 정확히 알 수 없는 원리 등이 합쳐져서, 초기에는 전통적인 암 학자들로부터 민간요법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확신에 찬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탐구정신이 마침내 원리를 규명하고 암환자들에게 한줄기 희망을 밝히게 된다.
면역항암요법의 원리는 면역 기능을 활용해서 암을 치료하는 것이다. 면역시스템은 외부에서 침입했거나 이질적인 세포를 인지하여 공격, 제거한다. 암세포도 이질적인 세포이므로 면역시스템의 공격을 받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암세포는 면역시스템을 속여 정상 세포로 인지하게 함으로써 계속 증식한다. 면역시스템은 자가 세포를 이질 세포로 착각하여 공격하는 (이를 자가면역 질환이라고 한다)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면역 관문 (Immune checkpoint)이라는 것을 두어 아군인지 적군인지 재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암세포는 바로 이 면역 관문을 통해 면역시스템을 속인다. 즉, 자가 세포 (아군)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암세포가 면역시스템을 속이지 못하도록 면역 관문 자체를 차단하면 면역시스템이 본연의 기능을 하게 되어 암을 제거할 수 있는데, 이 원리를 이용한 항암제를 면역관문 억제제라고 한다.
출처: 암 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
면역항암요법의 기원은 19세기 후반 하버드 의대 출신 골 전문 외과의사 윌리암 콜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육종암 환자의 종양 제거 수술 과정에서, 우연히 환자가 병원성 세균에 감염되었는데 놀랍게도 종양이 모두 괴사 되는 현상을 관찰하게 된다. 이를 통해 감염된 세균이 종양 괴사를 유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같은 방법을 다른 동일 암 말기 환자에게 적용한다. 놀랍게도 1891년 육종암 말기인 이탈리아 이민자 졸라에게 병원균을 다량 주사하여 동일한 결과를 얻어낸다. 두 번의 기적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그는 세균 감염이 면역시스템을 자극하여 종양을 괴사시킨 것이라고 추론하게 된다.
그러나, 이 치료법은 정확한 원리를 알 수 없었고 완벽히 재현도 되지 않는 터라 의사들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1968년 미국 국립 암 연구소 외과 과장인 스티븐 로젠버그가 확신을 가지고 이 치료법을 계승한다. T세포를 대량 배양하여 특정 암 종양을 공격함으로써 흑색종을 완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과가 완벽히 재현되지 않았으며, 고민 끝에 이는 무언가가 T세포의 작동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론을 하게 된다.
출처: 암 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
이후 텍사스 주립대 면역학과 제임스 앨리슨 교수와 일본 교토대 의대 혼조 다스쿠 교수가 최초로 CTLA-4와 PD-1이라는 면역관문을 각각 규명하였으며, 이 것을 통해 암세포가 T세포의 작동을 억제한다는 것을 밝혔다. 두 사람은 이 공로로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이후로 다수의 면역관문 억제제가 임상과 FDA 허가를 거쳐서 시판되고 있다.윌리엄 콜리의 우연한 발견이 100여 년의 진통 끝에 꿈의 항암제로 태어난 것이다.
학자들의 위대한 발견이 신약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임상을 주도하는 제약회사의 역할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새로운 일이 벌이질 때는 언제나 오래된 관습과 오래된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죠"
1세대 면역관문억제제인 항 CTLA-4 항체의 임상실험을 주도했던 글로벌 제약사 BMS의 악셀 후스 박사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상을 추진하면서 했던 말이다.
생의 마지막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약의 임상 실험에 자원하는 말기 암 환자들의 처절한 모습과, 면역 항암요법의 효능을 둘러싸고 학자들 간에 벌어지는 숨 막히는 학문적 갈등이 찰스 그레이버의 뛰어난 필력에 의해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진다. 또한 실험 및 임상 결과를 뒷받침하는 논문들과 전문 용어 및 역사적 사건들의 배경 설명이 각주로 상세히 추가되어 있다.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전문 교양서이다.
현재 면역항암제의 낮은 치료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머지않아 암에도 페니실린이 나오기를, 그래서 암이 완전히 정복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