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직장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해외 유명 대학 교수님에게 공동 연구를 위한 미팅을 제안했었다.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한 글로벌 기업과 유사한 미팅을 했는데 실컷 연구 얘기 듣고 시설도 다 둘러본 후에 연락이 없었다는 게 이유라고 했다. 즉, 협력 미팅이란 미명 하에 정보만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르다고, NDA (비밀유지계약)도 맺을 것이고 꼭 필요한 기술이니 반드시 협력도 할 거라고 얘기했다. 그래도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골이 깊은 불신이 느껴졌다.
그 이후론 대학이나 기업과 협력 미팅을 제안할 때 적지 않은 부담이 앞섰다. 그때 그 교수님과 비슷한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교수님들과 대표님들이 흔쾌히 미팅에 응해주시고 실제로 공동 연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화할 수는 없는 특별한 예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일이 있은 이후론 스스로 조심하고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의 정보 사냥으로 비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Open Innovation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자 모든 기술을 다 개발할 수는 없다. 없는 기술은 사 오고, 반쯤 개발된 기술은 공동연구를 통해 완성하면서 퍼즐을 맞춰나가야 한다. 즉, 돈으로 시간을 사는 셈이다.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모자란 2프로에 해당하는 자그마한 퍼즐 조각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대학이나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조직의 사활을 걸고 개발한 핵심 기술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단지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게 아닌, 그분들의 영혼이 실린 작품을 우리 집 거실로 모신다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기술의 평가와 당사 사업화와 align 여부를 따지기 전에, 그분들을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만날 준비가 되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그분들도 대기업을 믿고 깊이 있는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된다. 협력을 위한 미팅이란, 물건이 아닌 가치를 다루는 일임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