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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Oct 03. 2022

청춘의 독서


오늘 소개할 책은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다. 정치인 유시민이 잠시 정치인 신분을 내려놓고 작가로 활동하던 2009년에 낸 책이다.    


30여 년 전 청년 유시민이 탐독하며 인생을 설계했던 고전 14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이 책들에 기대어 나름의 행로를 걸었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특유의 화려한 필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당시에 갓 대학생이 된 딸에게 헌정했다. 자신이 30여 년 시행착오를 했던 것을 딸은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이 책을 주면서 사랑하는 딸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은 죽을 때까지도 전체를 다 볼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으며, 삶은 말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축복이라는 것을. 인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이며, 인생에는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길에서라도 스스로 인간다움을 잘 가꾸기만 하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사실 이 말이 작가 유시민이 청춘의 독서를 쓰면서 세상에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양한 삶들 사이엔 우열이 있을 수 없으며, 각자 잘 가꿀 수만 있다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그 얼마나 울림 있는 말인가?


총 14편 중, 특히 예비고사 (지금의 수능)를 한 달 앞두고 밤을 꼬박 새우며 읽었다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대한 반추가 와닿았다. 내가 읽었을 때의 느낌과 살짝 겹쳤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설의 도입부 문장 하나에 꽂혀버렸다고 얘기한다.


"그런 일을 저지르려고 하면서, 이토록 하찮은 일을 두려워하다니!" 그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여기서 "그런 일"은 살인이고, "이토록 하찮은 일"이란 하숙집 여주인과 마주치는 것이다.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돈을 훔치기로 결심한 주인공이 현장 답사를 위해 하숙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이, 집세가 밀렸다는 사실 때문에 주눅이 든 나머지 계단에서 하숙집 주인과 마주칠까 봐 마음을 졸였다.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을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비웃었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인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배다른 여동생 리자베따까지 죽인다. 그것도 도끼로 말이다. 폐결핵에 걸린 친구를 도와주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퇴역 관리가 마차에 치여 죽자, 그의 아내에게 장례 비용까지 건네주던 그 선량한 대학생이 왜 그랬을까?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인간 사회는 이런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내가 '죄와 벌'에 꽂혔던 것은 그 소설의 문학적 향취나 극적인 재미 때문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가 정밀하게 묘사한 제정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뒷골목의 음산한 풍경과 여러 등장인물들이 겪는 처참한 가난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죄와 벌'을 유독한 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꽃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순수하지만 성숙하지 않은 정신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고 얘기하며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에게 '죄와 벌'은 열병과 같은 정신적 흥분을 안겨준 날카로운 첫 키스였다."


짧으면서도 송곳 같은 표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열여덟 살에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되고 평생 간질로 고생했으며, 반체제 시국 사범으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유형 생활을 하는 등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대부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다. '죄와 벌'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저자는 이 책을 30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두냐'라는 예외적으로 정상인 인물을 새로이 발견한다. 그녀는 주인공의 누이동생이다.


저자는 '죄와 벌'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아무리 선한 목적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의 행동은 무조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파괴적인 전체주의 운동에까지 도스토옙스키의 생각을 확장 적용한다.


"스탈린과 히틀러, 그리고 이들의 지시를 받아 대량 학살을 저질렀던 수많은 부하들이 전당포 노파 자매를 죽인 것 때문에 라스꼴리니꼬프가 겪어야 했던 끔찍한 정신적 번민과 고통에 시달렸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죄악을 저지름으로써 어떤 선한 목적도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저자는 위의 예를 배경으로 할 때 두냐는 더욱 빛나는 인물이라고 얘기한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파는 소냐가 오빠를 좋아하자, 극렬히 반대하는 대신 똑같은 인격체로 대우해 준다. 또한, 오빠의 친구인 속물 같은 인간 루쥔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얘기하자, 단번에 거절하는 대신 오빠와 상의하고 신중히 생각하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두냐는 가족을 지극히 사랑하며 가족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여인이다. 소냐도 오빠를 따라 유형지에 갔고 그곳 범죄자들에게 어머니와 누이처럼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작가 유시민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소수에 의한 파괴적 전체주의'에 맞서는 '다수에 의한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보았다.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없이 많은 소냐와 두냐들이 좋은 세상을 만든 것이다. 만약 도스토옙스키가 20세기를 목격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을 때와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 '죄와 벌'을 읽을 때 느낌이 자못 달랐다. 나는 이전에 '죄와 벌'을 읽고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닌 인간의 깊은 고뇌와 심리가 깃든 불굴의 걸작으로 이해했었다. 작가 유시민은 거기서 더 나아가 도스토옙스키의 심리를 파악했고 이를 기반으로 인물들의 태생을 분석했으며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도출해냈다. 더 나아가 도출한 결론을,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었던 역사적 사건까지 확장해서 적용하기에 이른다. 사유의 깊이는 바다와 같고, 넓이는 우주와 같다. 과연 유시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깊이와 넓이를 이 책에선 열네 번 경험할 수 있다.

성큼 다가온 가을을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한 노스탤지어를 이 책으로 준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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