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와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그분은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임한 후 비교적 작은 회사에서 조그마한 조직을 맡고 있었다. 서슬 퍼랬던 옛날을 떠올리며 푸념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환한 얼굴로 연신 회사 자랑을 했다.
과거 대기업 임원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했다. 과거에는, 화려한 옷이 입고 싶어 맞지도 않는 옷에 몸을 욱여넣었었다면, 지금은 그리 빛나지는 않지만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으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는 것이다.
맡은 조직이 작으니 자연스럽게 권위를 내려놓고 부서원들에게 다가가 긴밀히 소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친근한 유대관계도 생기고 이젠 부서원들이 개인적인 고민도 상의해온다고 한다. 내가 알던 과거의 그분이 아니었다. 항상 눈에 힘주고 어깨엔 몸무게보다 무거울 것 같은 견장을 찬 권위주의적인 모습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변하셨냐고 물으니, 퇴임 후 재취업 과정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지인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고 했다. 왜 꼭 사람들은 한번 넘어져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걸까? 나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미리미리 평소에도 한 번씩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선배는 취기가 오르자 분위기를 잡더니 이내 미안하다는 말을 해왔다. 과거 함께 일할 때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했다면 용서해달라는 것이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조직의 뜻을 따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상처 준 것 같다고. 사람은 안 변한다던데 이분은 변해있었다. 사실 살짝 서운한 점이 있었는데 사과를 해오니 내가 더 머쓱해졌다. 우리는 소주 한 잔에 묵은 감정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언제 상하 조직장 사이었었나 싶을 정도로, 막역한 형님 동생 사이가 되어 있었다.
기억에 남을 선배와의 저녁 식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