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시작했던 박사과정 동안, 나는 배수의 진을 치고 전장에 임하는 전사여야 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3년 반 만에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실력을 인정받아 포스닥 기간 없이 연구교수 발령을 받았다.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 기쁜 마음도 잠시, 내 마음 한 구석엔 공허함이란 세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증식을 시작했다. 목표를 이룬 후에 찾아온 공허함의 쓰나미였다.학교 상담센터를 찾아 얘기를 털어놓으니, success depression (성공 우울증) 같다고 했다. 목적한 바를 이룬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이었다.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정말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얘기해 주라 시던 상담 선생님은 일어나는 내게 포스트잇 한 장을 건네시면서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종이에 적힌 책 이름이 바로 '30년 만의 휴식'이었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무석 박사는 정신분석학 전문가로, 환자들의 정신세계를 분석하여 마음의 자유와 휴식을 얻게 해 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30년 임상 경험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30년 만의 휴식'이다.
대학교수인 선박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강의 공포증으로 병원을 찾는다. 무조건 쉬라는 의사의 말에 강제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 노트북 없이. 그러자 신기하게 다시 활력을 찾았고 강의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무려 30년 만의 여행이 선박사에게 진정한 휴식을 주었고, 일상의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것이다. 선박사와의 일화를 모티브로 책을 쓰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성공했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선박사들과 아직 성공에 이르지 못해, 성공만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올인하는 선박사들, 그리고 이미 나에겐 성공은 물 건너가 버린 일이라 자포자기하며 불행함을 느끼는 선박사들에게 성공 그 자체가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인생은 조건 때문이 아니라 개별성 때문에 값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외면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성공은 내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로 결정되어진다. 부족해도 여전히 내 자식은 소중한 존재이듯 나 자신도 그런 것이다. 소중한 당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길 바란다. 그동안 자신을 너무 구박했다면 오늘 밤은 조용한 시간에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사과해 볼 일이다. '누구야, 미안해. 그동안 내가 너를 너무 구박했지?' 하고 말이다."
"공부벌레, 일벌레였던 휴의 벌레 근성은 열정의 탈을 쓴 집착에서 온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실력 있는데도 날 버려? 어림없지' 하면서 타인의 인정에 집착했다. 공부와 일에서 얻는 성취감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열등감을 극복하려했다. 성취감을 얻는 순간 그것을 잃을까 봐 불안했고, 잃으면 비참해질 거라는 시커먼 두려움이 밀려왔다. 공부나 일이라면 식은 죽 먹듯이 척척 해내면서도 늘 식은땀이 흐르고 힘겹고 괴로왔다.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다 보니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이 했다. 일 차제 보다는 결과에 매달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쫗겨 가며 일했다.그렇게 일에 지쳐 갔다."
책을 처음 접한 후로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제일 가까이에 두고 공허할 때마다 읽고 있다. 책이 너덜 해질수록 내 마음은 자존감으로 가득 차 온 것 같다.
너무도 열심히들 사는 분들께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읽어볼 것을 권한다. 스스로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