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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Jun 03. 2021

신뢰에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얼마 전 발행한 '진정한 신뢰는 책임지는 것'이란 글에서, 믿음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견해 차이를 딜레마로 정의했고 이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상호 신뢰의 관건이라고 얘기했다. 또한, 누군가를 믿고 일을 맡길 때는 결국 결과까지 책임져 주는 것이 진정한 신뢰라고 얘기했었다.


오늘은 믿음의 또 하나의 딜레마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이다.

믿고 맡겼는데 상대방이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믿음이 비수가 되어 내 등에 꽂힌다면 큰일 아닌가?

여기서 반대로 행동한다는 뜻은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나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고, 처음부터 나쁜 마음을 먹고 배신의 행동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아무리 결과까지 책임진다는 전제하에 믿고 맡긴다고 해도 내 등에 꽂히는 비수까지 내가 감수해야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보육 교사를 믿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는데, 학대받았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의사를 믿고 전신 마취 수술을 받았는데 몹쓸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삼국지의 여포를 보자. 출세에 눈이 어두워 자신을 보살펴준 양아버지를 죽인다. 배신의 단맛은 또 다른 배신을 낳게 하고, 결국 여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어느 노파가 배관이 고장 나서 수리공을 불렀는데, 5만 불이라는 수리비가 쓰여있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것이다. 눈이 침침한 노파는 그저 몇십 불 정도 하겠지 하고 도장을 찍는다. 다행히 한 번에 거액을 찾으려는 노파를 이상하게 여긴 은행원의 신고로 수리공은 잡히고 만다. 사리분별 능력이 부족한 노파를 대상으로 사기를 친 것이다.   


한 때 코로나 때문에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은 2주 의무 격리 대상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추적을 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이동하면 알 수가 없다. 그저 믿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모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이다.


이쯤 되면 뭔가 신뢰를 뒷받침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기술 보유 기업들은 철저한 보안 교육을 한다. 산업 비밀 및 지적 재산권의 무단 유출은 법으로도 엄격히 제어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유출된 이후 법으로 처벌해봤자 소용없다. 버스 떠난 이후에 손 흔드는 식이다. 그래서, 최종 점검을 한다. 바로 퇴근 시 철저한 검문검색이다. 회사에서 얻은 유, 무형의 재산은 먼지 하나라도 가지고 나갈 수 없다. 그러니 부적절한 행위는 아예 꿈도 못 꾼다. 시스템으로 신뢰를 보완한 것이다.


어린이집, 병원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어야 하고 계약 시에는 중계자가 2중 체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양쪽의 신뢰도를 높인다. 아무 안전장치 없이 믿겠다고 했다가 끊임없이 의심을 주고받는다면 이보다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심리학 용어에 관중 효과 (audience effect)와 감시 시선 효과 (watching-eye-effect)가 있다.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때 반사회적 행동은 감소하고 친사회적 행동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 많은 데서는 나쁜 짓을 잘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공공장소나 공식적인 계약은 시스템으로 보완한다고 해도 개인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 지인 또는 동업자 등과의 관계에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경우에는 각자 꼼꼼히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한 손에는 믿음과 신뢰를, 다른 한 손에는 관심과 관찰을 쥐고 끊임없이 밀당을 해야 한다.

양손이 균형을 맞춰야 상대방과의 신뢰도 쌓일 수 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아니 온 세상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가상의 시스템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스스로와 타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신뢰에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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