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으셨다
현실로 다가온 아버님과의 이별
3년 전쯤 아버님 (장인어른)은 전립선암 3기 진단을 받으셨다. 일단 전립선과 전이된 방광을 제거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셔야 한다는 게 주치의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은 길어야 3년 정도일 거라고.
하지만 아버님은 주치의의 말을 따르지 않으셨다. 요루 (소변 주머니)를 차고 기약 없는 항암치료를 받느니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셨다. 살만큼 살았고 사회적으로도 소임을 다했으며 아들 딸 시집 장가도 보냈고 이쁜 손주들도 봤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꼭 가족들과 상의하시던 분이 이 중차대한 일에 대해서는 독자적으로 결정을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셨는지 미안하다고 이해해 달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지금껏 본인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오셨듯이 삶의 마지막도 뚜렷한 주관으로 통제하고자 하셨다.
이후 3년 동안 아버님은 서서히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셨고 당신 생각대로 가족, 지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그러다가 올해 봄, 갑자기 심각한 상황이 찾아왔다. 꽉 찬 암세포로 인해 배뇨와 배변에 장애가 온 것이다. 배설의 장애로 인한 고통이 암으로 인한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드셨나 보다.
결국 전립선과 방광 그리고 전이된 대장까지 모두 절제하고 요루와 장루 (대변 주머니)를 부착하는, 10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으셨다. 85세 노인에겐 너무 큰 수술이라 못 깨어나실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도 있었지만, 다행히 3일 동안의 사투 끝에 의식을 회복하고 차츰 기력도 찾으셨다.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되었기 때문에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주치의의 말은 차마 전할 수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수술이었다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었던 3년 전에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대장까지 절제할 일도 없었고, 지금쯤 완치되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가족들은 차마 이 말을 입밖에 낼 수 없었다.
수술 후 석 달 여가 지난 지금 원래의 배설 기관이 아닌 인공 배설 주머니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받아들이셨다.
우리가 할 일은 자주 찾아뵙고 즐거웠던 이야기 행복했던 추억을 최대한 많이 함께해드리는 게 전부였다. 어제도 우리 네 가족은 처갓집으로 총출동했다. 그런데 거실 테이블 위에 대학병원에서 발행한 약 처방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두껍고 큼직한 글씨로, '마약 처방전'이라고 씌어있었다. 마약성 진통제도 아닌 '마약'이었다.
집사람이 놀라서 아버님께 여쭤봤다.
"아버지, 이게 뭐예요? 마약이라니..?
"그렇게 됐다.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처방을 해주더구나. 의사 말이 앞으로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질 거라고. 힘들더라도 조금씩만 먹으라고 하더라. 처음부터 많이 복용하면 나중엔 내성 때문에 듣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해야 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진 것이다. 전신에 퍼진 암세포 때문이었다.
집사람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급히 주방으로 향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 좋아하시는 다방 커피 한 잔 타 드릴게요."
아버님 앞에서 울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또 어기고 말았다.
아버님과의 이별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