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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Jul 18. 2021

추억의 예술의 전당을 그리다

아들과 추억이 깃든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은 아들과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아들이 초등학고 3, 4학년이던 2년 동안 이곳에서 주관하는 미술영재 아카데미를 다녔기 때문이다. 방학 동안 주말에만 다녔는데, 늘 아내와 함께 데리고 다녔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누나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들의 그림을 본 지인이 그림 스타일이 상당히 독특하다면서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미술영재 아카데미에 지원해보라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미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아이가 무슨 영재냐 하면서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래도 당사자의 생각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들에게 의사를 물어보니 한 번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경험 한다는 생각으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우리 아들은 3학년이 되기 때문에 3,4 학년반에 지원했는데, 달랑 40명만 뽑는다는 소리를 듣고 일찌감치 마음을 비웠다. 대충 봐도 수백 명은 온 것 같고, 거기다가 다들 웬만한 화가 뺨치는 미술 도구들을 들고 오는 게 아닌가? 우리 아이는 달랑 연필 몇 자루와 지우개가 그림 도구라고 가져온 것의 전부였으니 시작부터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이 지나고 아들이 나왔는데,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물어보니 주어진 주제에 대해 그냥 평소대로 그렸다는 것이다.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한 달쯤 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합격자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떡하니 아들의 이름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가 미술 영재라니.. 기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영재를 몰라본 우리 부부의 우둔함에 대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오디션에 합격하고 2년 동안 미술영재 아카데미를 다녔다. 그곳은 그림 스킬보다는 각자의 창의력을 키워주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들도 무척 재미있게 다녔었다. 작년 말에 작품 전시회가 예정되어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어 무척 안타까웠다.

 


아들을 데리고 다니던 시기에 찍어둔 예술의 전당 음악당 광장 사진을 우연히 보면서 추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요즘 물오른 (?) 그림 실력으로 번 따라 그려보았다. 역시 디지털의 힘을 빌려 탭에 그렸다.



4시간 가까이 공을 들여 그린 후에 아들에게 보여줬다. 난 그림 그릴 때면 미술 영재인 아들 앞에서 작아지곤 한다. 아들이 씩 웃더니 군데군데 터치하면서 마무리를 도와주었다. 마치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그러면서, 날 선 비평도 잊지 않았다.


가운데 검은색 기둥을 기준으로 좌우의 포커스가 틀리다고. 오른쪽이 왼쪽보다 뒤로 가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그랬다. 즉, 오른쪽을 앞으로 당겨서 왼쪽에 있는 건물과 동일 선상으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에도 보면 그렇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최근 미술 공부로 다져진 내공으로 한마디 물었다.


"그럼 입체주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빠는 참, 그게 무슨 입체주의야? 입체주의는 여러 면에서 봤을 때 포커스가 다 달라야 해.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처럼 말이야. 이건 그냥 좌우 원근을 틀리게 그린 거라고."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괜히 아는 체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그림 앞에서 무한 카리스마를 뿜는 아들 녀석이 참 대견하다.


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이 요즘 부쩍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미술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누나처럼 자기 주도적인 진로 선택을 한다면 우리 부부는 무조건 오케이다.  


누나가 그랬듯이 취미를 전공으로 삼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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