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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Aug 29. 2021

길냥이와의 교감,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림으로 표현한 길냥이와의 교감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자주 보이는 길냥이가 있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미니 호랑이 같이 멋지게 생긴 녀석이다. 가끔 나와 마주치면 잽싸게 도망을 다. 단지에 길냥이 밥을 챙겨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한테는 여간 살갑게 구는 게 아니다. 역시 밥 주는 사람이 최고인 걸 아는 것이다. 그분들은 이름도 지어서 부르는 것 같았다. 가만 들어보니 흑백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마주쳤을 때 나도 "흑백아"라고 한번 불러봤다. 그랬더니 평소와 달리 도망가지 않고 나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도망가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길냥이


"나를 흑백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직 밥 주는 집사들 뿐인데, 그렇다면 저 사람이 집사란 말인가? 가끔 마주쳤던 기억이 있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집사는 아닌 것 같아. 내게 밥을 준 기억이 없어. 그렇다면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을까?"


한참을 나를 보며 생각하더니 평소처럼 잽싸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집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음에 간식을 갖고 오시면 집사로 인정해드릴게요. 이왕이면 꾸준히 오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알았어. 다음엔 꼭 간식 챙겨 올게. 도망가면 안 돼 흑백아! 알았지?


나는 단 십여 초에 불과했지만 길냥이와 분명히 소통을 했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를 쳐다보며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는데, 내친김에 똑같이 그려봤다.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린 길냥이

동물은 처음 그려봤는데, 무척 어려웠다. 표정을 그대로 살려내는 건 내겐 너무 벅찬 일이었다. 그래도 세 시간 가까이 그렸다 지웠다를 무한 반복하며 내 수준에선 가장 비슷하게 그렸다. 길냥이와의 교감의 힘이 창작욕에 기름을 부었을까?


우리 집 비평가들에게 보여줬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와우! 완전 똑같다! 당신이 그린 거 맞아요?"

"아빠가 이제 그림을 좀 그리시는데!"


호평 일색이었다. 칭찬은 50대 아저씨도 춤추게 했다. 참, 이게 뭐라고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길냥이와의 소통을 주제로 끄적이고 있자니, 고양이와의 소통을 재미있게 풀어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 떠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많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그중에 '뮤즈'라는 고양이는 20년 이상을 살았다. 뮤즈와의 소통을 주제로 한 얘기를 포함한 단편 소설 모음집이 바로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다.


하루키는 뮤즈가 열두 살 때 출판사 관계자에게 뮤즈를 맡기고 일본을 떠난다. 뮤즈를 맡긴 대가로 장편 소설을 써줬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들어 준 '노르웨이의 숲'이다. 하루키에게 뮤즈는 복덩이였던 것이다.


뮤즈는 암컷으로, 몇 번의 출산을 통해 적지 않은 새끼들을 낳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마다 하루키는 뮤즈와 출산의 고통을 나눴다는 것이다. 뮤즈가 뒷다리를 벌려 앉으면 하루키는 뒤에서 앞발을 잡고 받쳐주었다. 보통 한 번에 네다섯 마리를 낳는데 거의 두세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하루키는 줄 곳 뮤즈 옆을 지켜주었다.





출산하는 고양이와 한밤중에 몇 시간씩 마주하고 있던 그때, 나와 그 애 사이에는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고양이니 인간이니 하는 구분을 넘어선 마음의 교류였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뭇 기묘한 체험이었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140쪽에서-



개는 자기에게 밥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섬기는 데 비해 고양이는 밥 주는 사람을 집사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강아지 주인은 견주라 하고 고양이 주인은 냥 집사라고 다. 고양이는 주인한테도 곁을 잘 내주지 않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뮤즈의 행동이 더 특별해 보였다. 주인과의 특별한 교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출산이라는 매우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것을 주인과 공유해도 되겠다는 확고믿음있었던 것이.

 

내일이라도 간식을 들고 흑백이 한 테 가봐야겠다. 흑백이가 나를 보자마자 내게 다가와 준비한 간식을 맛있게 먹는다면, 내가 주장한 우리의 교감은 적어도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


우리는 사람한테 실망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배신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반려동물은 주인과 교감하고 곁을 내주며 삶이 끝날 때까지 주인을 섬긴다.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해 주는 심리 치료 반려견도 있으니 어찌 보면 말 못 하는 짐승이 사람보다 나을 때도 있는 것 같다.  


길냥이와의 우연하고도 짧은 만남에서 교감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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