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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Mar 19. 2021

시대를 너무 앞서간 쇼트트랙 꿈나무

수영을 배웠던 비슷한 시기인 초등학교 4, 5학년 때 나는 스케이트도 함께 배웠다. 당시엔 국내에 실내 스케이트장이 딱 한군데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 스케이트장이 그것이다. 실내 스케이트장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전국에서 스케이트를 타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대문 스케이트장에 모였다. 선수들과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 그리고 가족 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이 모두 한 군데에 모여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거기에서 선수 출신이나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강습을 했는데, 나는 연세가 지긋한 선생님께 스피드 스케이팅 개인 지도를 받게 되었다. 당시엔 피겨 스케이팅과 스피드 스케이팅 그리고 아이스하키 이렇게  세 가지 강습이 있었다.


처음엔 스케이트를 신고 혼자 서있기도 힘들었는데, 점차 실력이 늘어 일주일 만에 코너링까지 하는 수준이 되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코너링이 가장 중요하다. 왼발로 지지를 하고 오른발로 최대한 차주면서 직선에서의 속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중심도 잘 잡히고 폼도 괜찮았다. 


스케이팅하는 모습을 그려봤다. 


예체능은 확실히 타고난 재능이 중요한가 보다. 수영에 비해 스케이트는 재미도 있었고 실력도 부쩍 늘었다. 영업 전략인지는 모르지만 선생님께서 어머니한테 아들을 선수로 키워보시지 않겠냐고까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당시엔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 올림픽을 대비한 꿈나무 선발 대회가 한창이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나서 이젠 제법 선수 흉내까지 내는 수준이 되었다. 비교적 한가한 시간에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시합 비슷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의 국제 규격은 한 바퀴가 400미터가 되어야 하며 최소 거리 종목은 500미터 경기이다. 육상으로 치면 100미터 경기인 셈이다. 당시 동대문 스케이트장은 국제 규격에 한참 못 미치는 조그마한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제대로 연습처럼 할 수는 없었다. 대충 비슷하게 레인을 정하고 사람들을 최대한 피하면서 하곤 했다. 


나는 비교적 몸이 호리호리했고 코너링에 능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로 쏙쏙 잘 빠져나갔다. 대신 레인을 지키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았던 탓에 가속이 잘 붙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이렇다 보니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레인을 모두 없애고 출발점과 도착점만 지킨다면 1등할 자신이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실제로 레인을 무시한 연습에서 1등은 거의 내 차지였다. 그런 종목이 있다면 선수로 뛸 자신도 있었다.  


용기를 내서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공식적으로 레인을 없애고 연습을 해보는 게 어떻게냐고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다소 당혹스러워하시더니 그런 종목은 없다면서 시합에서는 레인을 지켜야 하니 연습 때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어 달 정도 그렇게 스케이팅을 잘 배웠고, 선수가 될까 봐 걱정이 된 (?) 어머니는 "이제 우리 아들은 공부를 해야 하니 그만두겠습니다"라고 선생님께 양해를 구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TV를 봤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경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레인 없이 오로지 도착한 순서만 따져 순위를 매겼다. 이것이 바로 쇼트르랙이라는 종목이었다. 쇼트트랙은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 처음 시범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고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되었다. 변함없는 메달밭이자 효자 종목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1984년 태릉 스케이트장에서 첫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 선발 대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선발된 김기훈 선수는 1988년 동계 올림픽 시범 종목에서 대한민국에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안겨주었고,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는 정식 종목으로 첫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강릉 선수촌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내가 스케이트를 배웠던 시기가 1980, 81년쯤이었으니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었다. 


난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스케이트를 즐기곤 했다. 집사람과 데이트할 때도 롯데월드 빙상장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고, 아이들과도 함께 즐기곤 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가 보기엔 그냥 쓱쓱 얼음에 미끄러지듯 나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일단 허리가 너무 아프다. 그래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은  몸의 유연성을 위해 수영을 병행한다. 오로지 도착점만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1등으로 들어온 순간의 환희와 성취감이란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른다. 


비록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선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는 스케이팅을 통해 나 자신과 싸우는 연습을 미리 해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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