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드퓨처 Mar 18. 2021

삶의 소중함을 너무 일찍 깨달은 어린이

나는 비교적 어렸을 때인 초등학교 4, 5학년 때쯤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때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이화여자대학교 내에 수영장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수영을 배웠다. 외아들이 튼튼하게 자라길 바라셨던 어머니의 특별 로비 (?)로 이대생과 이대 부속학교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대 수영장에서 개인 지도까지 받았다. 원래 물을 썩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맨몸으로 물에 뜬다는 게 묘기처럼 느껴졌던 나였기에 수영이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을 법으로 생각했던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자고 다짐했다. 완전 초보였기에 물이 허리까지 오는 풀에서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몸 전체를 물에 담그기, 몸에 힘 빼고 물에 떠 있기, 발차기 그리고 숨쉬기와 팔젓기 등 웬만한 동작들을 선생님이 하나하나 직접 교정하시면서 가르쳐 주셨다. 어느덧 물과도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다.


수영하는 모습을 그려봤다. 


한 달쯤 지나자 킥 판을 잡고 배운 걸 활용하는 단계까지 갔다. 어린이 풀에서 왕복하는 수준까지 된 것이다. 물론 선생님이 바로 옆에 붙어서 잡아주셔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의 체형이 조금씩 변하는 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임신을 하신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와 처음 강습을 시작할 때 임신 초기였다고 한다. 아마 막 입덧이 끝나고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두 달 가까이 지났으니 배가 나온 게 느껴질 정도가 된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선생님을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상한 스타일에 적응도 되고 했으니 출산 때까지는 그냥 배우기로 했다. 


대망의 어른용 풀로 나가는 날이다. 어린이용 풀의 최고 수위는 1.5미터로 내 키와 얼추 비슷했다. 어른용 풀은 출발할 때 보니 1.6미터라고 벽에 쓰여있었다. 뭐 이 정도쯤이야 내 키와 비슷하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선생님께서 몸이 너무 무거워서 나를 옆에서 잡아주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밖에서 보고 있을 테니 배운 대로 끝까지 갔다 오라고. 잘하고 있으니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힘도 실어주셨다. 나도 그리 깊지도 않으니 괜찮겠다고 생각하고는 자신 있게 킥 판을 잡고 출발했다. 


그런데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게 있었다. 숨쉬기를 위해 얼굴을 들었을 때 벽을 보니 숫자 2.0이 보였다. 헉.. 갈수록 점점 깊어지는 것이었다. 다음 숨 쉴 땐 2.8이 보였고 그다음엔 3.0이 보였다. 젠장 거의 내 키의 두 배가 아닌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깊은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바로 그 순간 내 바로 앞에 덩치가 엄청 큰 사람이 선채로 물에 떠있는 게 아닌가? 선생님의 조심하라는 외침과 함께 나는 그분의 등을 정면으로 추돌하고는 킥 판을 놓치고 말았다. 3미터 깊이의 물에 빠진 것이다. 순간 배운 건 모두 잊어버렸고 발버둥 칠수록 물이 입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더 이상은 기억이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곳은 탈의실로 가는 통로 바닥이었다. 주변엔 입에서 나온 무언가로 흥건히 젖어있었고, 선생님께서 내 손을 꼭 잡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계셨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안도 섞인 표정이 내가 살았음을 일깨워 주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가까이에 있던 형이 나를 구했고 선생님께서 응급조치를 하셨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며칠 쉬는 동안 시위로 인해 대학 봉쇄령이 내려졌고 수영장도 문을 닫았다. 그렇게 나의 수영 강습은 굵고 짧게 끝나고 말았다. 


내겐 이 일로 인해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는 삶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고 둘째는 물이 무서워진 것이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잘 몰랐지만,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자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매사에 감사하고 덤으로 사는 삶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물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내 키보다 깊은 물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신혼여행 때와 가족 여행으로 세부에 가서 스노클링 할 때 딱 두 번 빼고. 


세상은 공평한 가보다. 감사함을 주고 그 대가로 물속의 평화를 가져갔으니 말이다. 너무 일찍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그만한 값어치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때 물에 빠지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