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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Dec 12. 2021

아빠가 끓여준 마약 된장찌개

딸이 수능 준비에 한창이던 작년 가을 어느 날의 이야기.


저녁 시간이 다되었을 때쯤, 독서실에서 공부 중인 딸아이한테서 카톡이 왔다. 저녁에 치킨이 먹고 싶다고 주문을 좀 해달라는 것이다. 자주 시켜 먹는 치킨집에 전화를 했는데 이상하게 몇 번을 해도 받지를 않는다. 아마 쉬는 날인가 보다. 딸에게 올 때 한번 들러보라고 했는데 역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어이쿠 이를 어쩌나 치킨만 믿고 저녁 준비는 손 놓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나는 급히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 저녁의 주메뉴는 된장찌개였다. 이제 된장찌개 끓이는 건 누워서 떡 먹기다. 다시마 팩으로 우려낸 국물에 재래식 된장을 두 스푼 넣는다. 그다음, 표고버섯과 호박, 시금치 그리고 두부를 숭숭 썰어 넣고 다진 마늘 한 스푼 넣으면 끝이다. 간은 새우 액젓으로 맞춘다. 마침 주말에 사 표고버섯이 참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여 잔뜩 넣었다.


치킨집이 문을 닫았다며 빈손으로 집에 온 딸과 누나를 기다리던 아들에게 나는 치킨보다 맛있다며 된장찌개를 내놓았다. 치킨을 사 온다는 누나의 말에 덩달아 잔뜩 기대했던 아들 녀석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얘들아, 치킨은 내일 꼭 사줄게. 오늘은 아빠가 끓인 맛있는 된장찌개로 대신 하자. 괜찮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맛본 된장찌개가 의외로 맛있었나 보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어 너무 고마웠다. 아이들이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식성은 나를 닮은 것 같다.

식사 후에 딸은 다시 독서실로 갔고, 나와 아들은 저녁 산책을 나갔다.


한참 걷고 있는데 저만큼 앞 도로에 경찰차가 서있고 경찰들 2~3명이 서서 서로 얘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 건가 싶어 조금은 걱정을 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는데 아들이 뜬금없이 말을 던진다.

"아빠 저 경찰 아저씨들 사실 내가 부른 거야."

"뭐? 네가 경찰을 불렀다고? 왜?"

"어~ 아빠가 끓여준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어서 혹시 아빠가 이상한 마약 같은 거라도 넣은 게 아닌가 해서 경찰을 불렀지ㅎㅎㅎ"

"뭐야?ㅎㅎㅎ 이 녀석이.. 야 하나도 안 웃겨~~"

아빠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탓에 아재 개그까지 배운 우리 아들..

순간 생각이 났는데, 다진 마늘 넣는 걸 홀딱 까먹었다.

그래도 마약 된장찌개 소리를 들었으니 다음에 다진 마늘까지 넣으면 아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진짜 경찰을 부르는 건 아니겠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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