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수능 준비에 한창이던 작년 가을 어느 날의 이야기.
저녁 시간이 다되었을 때쯤, 독서실에서 공부 중인 딸아이한테서 카톡이 왔다. 저녁에 치킨이 먹고 싶다고 주문을 좀 해달라는 것이다. 자주 시켜 먹는 치킨집에 전화를 했는데 이상하게 몇 번을 해도 받지를 않는다. 아마 쉬는 날인가 보다. 딸에게 올 때 한번 들러보라고 했는데 역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어이쿠 이를 어쩌나 치킨만 믿고 저녁 준비는 손 놓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나는 급히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 저녁의 주메뉴는 된장찌개였다. 이제 된장찌개 끓이는 건 누워서 떡 먹기다. 다시마 팩으로 우려낸 국물에 재래식 된장을 두 스푼 넣는다. 그다음, 표고버섯과 호박, 시금치 그리고 두부를 숭숭 썰어 넣고 다진 마늘 한 스푼 넣으면 끝이다. 간은 새우 액젓으로 맞춘다. 마침 주말에 사 온 표고버섯이 참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여 잔뜩 넣었다.
치킨집이 문을 닫았다며 빈손으로 집에 온 딸과 누나를 기다리던 아들에게 나는 치킨보다 맛있다며 된장찌개를 내놓았다. 치킨을 사 온다는 누나의 말에 덩달아 잔뜩 기대했던 아들 녀석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얘들아, 치킨은 내일 꼭 사줄게. 오늘은 아빠가 끓인 맛있는 된장찌개로 대신 하자. 괜찮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맛본 된장찌개가 의외로 맛있었나 보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어 너무 고마웠다. 아이들이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식성은 나를 닮은 것 같다.
식사 후에 딸은 다시 독서실로 갔고, 나와 아들은 저녁 산책을 나갔다.
한참 걷고 있는데 저만큼 앞 도로에 경찰차가 서있고 경찰들 2~3명이 서서 서로 얘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 건가 싶어 조금은 걱정을 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는데 아들이 뜬금없이 말을 던진다.
"아빠 저 경찰 아저씨들 사실 내가 부른 거야."
"뭐? 네가 경찰을 불렀다고? 왜?"
"어~ 아빠가 끓여준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어서 혹시 아빠가 이상한 마약 같은 거라도 넣은 게 아닌가 해서 경찰을 불렀지ㅎㅎㅎ"
"뭐야?ㅎㅎㅎ 이 녀석이.. 야 하나도 안 웃겨~~"
아빠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탓에 아재 개그까지 배운 우리 아들..
순간 생각이 났는데, 다진 마늘 넣는 걸 홀딱 까먹었다.
그래도 마약 된장찌개 소리를 들었으니 다음에 다진 마늘까지 넣으면 아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진짜 경찰을 부르는 건 아니겠지?ㅎㅎ